어느푸른저녁

나는 혼자 너무나 조심스러웠고, 그곳의 모든 것들은 아득하기만 했으므로

시월의숲 2022. 2. 5.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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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순간들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바다를 본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바다를 보게 되었다. 우리들은 조금 늦게 출발한 덕분에 일몰을 볼 수 있었다. 바닷가에서 맞이하는 일몰은 설명하기 힘든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바라본 일몰의 바다는 마치 투명하고 얇은 얼음막으로 감싸인 듯 느껴졌다. 손을 뻗으면 거기 살얼음이 만져질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투명하고 티 없는 바다 위에 갈매기 한 마리만이 유유하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순간 비현실적인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분명 그곳에 존재했으나, 풍경 속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투명한 막을 찢을 용기가 내겐 없었다. 나는 혼자 너무나 조심스러웠고, 그곳의 모든 것들은 아득하기만 했으므로. 뻗은 손이 가 닿을 수 있는 곳이란 고작 '나'라는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는 거리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