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순간들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바다를 본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바다를 보게 되었다. 우리들은 조금 늦게 출발한 덕분에 일몰을 볼 수 있었다. 바닷가에서 맞이하는 일몰은 설명하기 힘든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바라본 일몰의 바다는 마치 투명하고 얇은 얼음막으로 감싸인 듯 느껴졌다. 손을 뻗으면 거기 살얼음이 만져질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투명하고 티 없는 바다 위에 갈매기 한 마리만이 유유하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순간 비현실적인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분명 그곳에 존재했으나, 풍경 속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투명한 막을 찢을 용기가 내겐 없었다. 나는 혼자 너무나 조심스러웠고, 그곳의 모든 것들은 아득하기만 했으므로. 뻗은 손이 가 닿을 수 있는 곳이란 고작 '나'라는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는 거리였으므로.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0) | 2022.02.09 |
---|---|
우리 잘못이 있다면 처음부터 결함투성이로 태어난 것 뿐이란 걸 (0) | 2022.02.06 |
얼마나 이상한 방식으로 서글픈 것인지 (0) | 2022.02.03 |
나무의 시간 (0) | 2022.01.28 |
너의 세계는 고작 너라는 인간의 경험일 뿐 (0) | 2022.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