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얼마나 이상한 방식으로 서글픈 것인지

시월의숲 2022. 2. 3. 00:30

가끔 생각해.

혈육이란 얼마나 이상한 것인지.

얼마나 이상한 방식으로 서글픈 것인지.(한강, 『희랍어 시간』 중에서)

 

 

*

설 연휴가 지나갔다. 연차를 내고 모레까지 쉬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내일 출근을 해야 하니 오늘이 설 연휴의 마지막 날인 셈이다. 저번 주 토요일부터 오늘까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5일간의 연휴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아니, 많은 일이라기보다는 좀 많이 속상하고 슬픈 일들이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헤어 나오지 못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결국 슬픔에서 어떻게든 헤어 나오고 싶어서, 내 하나뿐인 동생을 어떻게든 이해해보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오늘 아침 동생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어제까지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이야기를 하고, 웃고, 울고, 떠들었었는데, 오늘 아침 마치 다른 사람처럼 내 얼굴을 보지도 않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는 동생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그의 태도에 화가 났다. 물론 연휴 동안 아무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가족들은 오랜만에 함께 모여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러는 와중에 감정이 격해져서 목소리가 높아지고, 급기야는 서로 울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건 우리 가족들이 모이면 늘 있는 일이었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속상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 같다. 그것이 오히려 서로에게 독이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동생은 나와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고 나를 외면하듯, 마치 도망가듯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돌연한 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가 가고 난 뒤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조금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동생과 이야기를 해보지 않았으니까. 동생의 태도, 동생의 표정, 동생의 화가 그 이유 때문은 아닐까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하지만 아버지와의 대화는 나를 또 다른 감정에 빠져들게 했다. 

 

내가 동생에게서 느낀 화가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점차 다른 감정으로 바뀌었다. 내가 느낀 억울함과 울분이 어떤 안타까움, 어떤 자책, 결국 어떤 슬픔으로 귀결되었던 것이다. 나는 동생이 무척 안타까웠으며, 동생에 대한 내 무신경함과 외면에 가슴이 시렸고, 결국 한없는 슬픔을 느꼈다. 결국은 나로 인해 동생이 그런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목이 메어왔다. 그리고 무서웠다. 그가 더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아니, 아니다. 그런 생각은 하지 말자.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슬픈 마음은 접어두고, 너무 늦지 않게, 동생과 이야기를 나눠보자 생각했다.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왜 불필요한 오해로 인해 우리가 서로 가슴 아파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남도 아닌 한 가족인데. 세상에 하나뿐인 혈육인데.

 

혈육은 그 '하나밖에 없음'으로 인해 사랑하고 고통받는다. 이 얼마나 이상한 방식의 서글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