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시월의숲 2022. 3. 31. 21:50

배수아의 「아멜리의 파스텔 그림」을 읽다가 이런 문장을 만났다.

 

'많은 가슴 설렘과 비극에의 예감이 있었지만 결국은 그녀의 생에 아무런 결정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문득 달력을 보았고, 오늘이 3월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결정적인 일은 아니었지만, 결정적인 것처럼.

 

진은영의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봄, 놀라서 뒷걸음질치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봄, 이라서 눈에 더 들어왔는지도 모른다. 맨살에 닿는 아련하고도 따사로운 바람의 손길이 조금은 관능적인, 이 봄이라는 계절. 충만한 생명력으로 가득한, 하지만 어딘가 아플 것만 같은 희미한 예감으로 가득한, 이 이상한 계절의 푸른 머리를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