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이라는 부제가 붙은, 『눈먼 자들의 국가』를 읽었다. 나는 이 책을 책장에 꽂아 놓고 오랫동안 읽지 않았다. 가끔씩 눈으로 쓸어보기만 했을 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다만 이 책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무거움 때문에 선뜻 읽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좀 두려웠던 것 같기도 하다. 정말 그랬던가? 아니, 그조차 확실치 않다.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정말 알 수 없는 채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언젠가 읽으리라. 나는 그저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현실이 되었다. 나는 결국 그것을 읽었고(읽을 수밖에 없었고), 오래전 그날이 떠올랐고(떠올릴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읽는 동안 몇 번이고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감정 때문에 책을 잠시 내려놓아야 했으며(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당연하게도 빨리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읽지 않았던 이 책을, 생각보다 오랫동안 읽어야 했다.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일이 있다.
모든 것들이 오래되더라도, 세월호 참사만은 오래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은 분명히 떠올랐다. 결코 잊을 수 없고,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또렷해지고 선명해진다. 이 책은 내 그런 생각을 더 깊숙이 각인시켜주었다. '눈먼 자들의 국가' 속에서 나 또한 눈이 먼 채로 살아왔던, 세월호 이전의 나와 결별하고(결별할 수밖에 없고 - 우리는 결코 세월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이제부터라도 두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세월호는 그렇게 내게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박민규의 말처럼,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얼마나 쉬운지 모르겠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세상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더는 기대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이미 이 세계를 향한 신뢰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황정은, 「가까스로, 인간」 중에서)
"인간은 무능해서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고 또 인간은 나약해서 일시적인 공감도 점차 흐릿해진다.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신형철, 「책을 엮으며」 중에서)
절망은 쉽다. 망각도 쉽다. 비난과 혐오 또한 쉽다. 반면 희망은 어렵고(돌이킬 수 없으므로), 공감은 더더욱 어렵다(슬픔을 공부하지 않으므로). 그러므로 우리 쉽게 절망하지도, 쉽게 망각하지도 말고, 쉽게 비난과 혐오의 말을 내뱉지도 말자. 돌이킬 수 없음을 가슴에 새기고, 어렵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가슴에 품은 채, 타인의 슬픔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자. 최소한 타인의 슬픔을 향해 지겹다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아야 할 테니까. 그것이 왜 잔인하며 참혹한 일인지는 알아야 할 테니까. 그것을 모른다면 최소한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세월호를 겪은 우리는 이미 '가까스로, 인간'이 아닌가.
- 김애란 외,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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