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나는 막다른 길들을 바라볼 것이다

시월의숲 2022. 5. 19. 23:51

 

갑자기, 아무런 낌새도 없고, 어떤 연관성도 찾지 못한 채로, 오래전에 읽었지만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그것은 내 의지로 찾아진 것이 아니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이상하지, 어떤 내용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그것을 읽는 동안의 혼란스러움은 생생히 기억나다니. 이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가? 이것이 이 책의 진정한(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의도인가?

 

나는 무려 7년 전에 읽었던 책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거의 잊고 있던 그 책이, 갑자기 나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지금 이 순간 떠오른 이유를 어찌 설명할 수 있을까? 참으로 신기한, 아니,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나는 너무 일찍 그 책을 읽은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에 그 책을 읽고 나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난감했고,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쓰기를 포기했고, 책은 책장에 고이 꽂히게 되었다. 마치 읽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나는 7년이 지난 지금 그 책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책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지금 생각나는 책에 대한 느낌은 이렇다. 앞 문장과 뒷문장이 이어지지 않는다. 모든 문장들이 독립적이다. 그 자체로 끝인 문장들이 끝인 채로 끝없이 이어진다. '나'의 모든 것. 내가 경험하고, 생각하고, 느낀 모든 외부적이고 내부적인 것들. 내 생각의 파편들. 일부분들. 파편들의 모든 것. 부분적인 것들의 집합.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닌 어떤 것. 나의 외부, 외부에서 보는 나, 주관적 진술로써 객관화된 나. 온통 나와 관련된, 나의 생각, 건조하고,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그러므로 모든 것들이 다 '나'임을 주장하는 문장들.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없는 나. '나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모른다'라고 고백하는 나.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독특하고 무의미하며 부조리한 '나'의 자화상. 이것은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파편화된 나만의 독후감이다. 며칠 동안 나는 계속 그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 뒤늦은 사로잡힘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그것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했다. 

 

지루하다면 지루하고 인상적이라면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처음 책을 읽고 나서는 지루하다 생각했을 것이고, 지금은 인상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인상적이지 않다면 내가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을까?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가?' 아니다. 지금도 맞고 그때도 맞다. 지금은 지금의 느낌이, 그때는 그때의 느낌이 있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나는 지금 혼란스러운 상태인가? 혼란은 또 다른 혼란을 부르는 것일까?

 

그는 말한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모른다.(···) 내가 언제 죽든 열다섯 살은 내 인생의 중간이다. 나는 삶 후의 삶은 있지만 죽음 후의 죽음은 없다고 믿는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지 묻지 않는다. 나는 단 한 번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나는 죽어가고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또 이렇게도 말한다.

 

'나는 막다른 길들을 바라볼 것이다. 나는 삶의 끝에 기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서 단 한 줄의 문장도 쓰지 못할지라도, 그래서 거의 그것을 잊은 채로 지내더라도, 언젠가는 책이 먼저 말을 걸어줄 것임을 이제는 믿게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때까지 조바심 내지 않고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거의 그것을 잊은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