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필요한 일을 완수한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쓸쓸하고 인간은 여전히 외롭겠지만,

시월의숲 2022. 5. 2. 22:05

 

정보라의 『저주토끼』를 읽었다. 그는 책의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원래 세상은 쓸쓸한 곳이고 모든 존재는 혼자이며 사필귀정이나 권선징악 혹은 복수는 경우에 따라 반드시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필요한 일을 완수한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쓸쓸하고 인간은 여전히 외로우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필요한 일을 완수한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쓸쓸하고 인간은 여전히 외로우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이 소설집에 실린 열 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하나같이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음을, 나는 작가의 말을 읽고 깨달았다. 쉽게 희망을 말하지도 쉽게 절망에 빠지지도 않는 것. 나는 작가의 이 세계관이 마음에 든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희망을 이야기해서 절망과 가까워지고, 너무나 쉽게 절망에 빠져서 희망과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 더러운 세상에 나름의 복수를 했다 하더라도 돌아오는 건 새로운 삶과 환희가 아니라 그만큼의 또 다른 절망 혹은 환멸이라는 걸 우리는 어쩌면 이미 예감하고 있지는 않는가.

 

터무니없는 희망이 아니라 아주 조그맣고 비관적인(?) 희망일 때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쓸쓸'하고도 '씁쓸'한 위로. 그것을 위로라고 부를 수 있을지조차 망설여지는, 실낱같이 미미한,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것. 진실은 아마도 그 지점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 나는 오래전 이와 비슷한 시선을 가진 작가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아마도 김연수였을 것이다. 나는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절망을 아는 자의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 같다. 섣불리 희망을 혹은 절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소설의 성격은 많이 다르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김연수의 소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 쪽에 좀 더 가까웠던 것 같다. 하지만 정보라의 소설들은 보다 절망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이 책에 실린 열 편의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저주토끼>에서 대대로 저주인형을 만들어온 집안의, 주인공인 '나'의 유일한 위안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자식도, 손자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머리>에서의 나는 내가 버린 것들로 이루어진 또 다른 '나'에게 '나'의 자리를 뺏기며, <차가운 손가락>의 나는 영문을 모를 사고를 당한 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어떤 목소리를 따라나서고, <몸하다>에서는 매번 아이를 낳는 고통의 연속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여성의 월경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안녕, 내 사랑>에서는 반려 로봇의 반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처음엔 그들을 인간을 닮은 기계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인간과 전혀 다른 존재, 자신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임을 깨달으며, <덫>에서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한 끔찍한 우화를 들려주고, <흉터>에서는 제물로 바쳐진 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합당한 결말이었다 해도, 그는 밀려오는 상실감을 어찌할 수 없었다.' <즐거운 나의 집>은 집을 둘러싼 현대인들의 관계와 심리를 유령을 등장시켜 인상적으로 그려 보이며,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는 끝을 모르는 인간의 욕심이 스스로를 파멸하게 만드는 원인임을 확인시켜주며, <재회>에서는 과거에 갇힌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쓸쓸하게 풀어놓는다. 

 

이렇듯 열 편의 소설 모두 우리가 흔히 바라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아니, 그 희망이라는 것은 지극히 미미하고 존재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우며, 혹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전부 또는 일부를 내어주지 않고서는 결코 자그마한 것조차 받아 들지 못하는 냉혹한 어떤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완전히 뒤엎고 새롭게 시작하거나(그 시작도 결코 희망적이지는 않지만), 삶의 일부가 그 이전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파괴되어 버려서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만 하는 힘든 현실이 있다. 이런 암울한 비전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이미 수많은 좌절을 통해 지금까지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위에서 인용한 작가의 말에 이어지는 부분을 이제는 말해야겠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방식을 통해서, 낯설고 사나운 세상에서 혼자 제각각 고군분투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독자에게 위안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조그만 희망이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읽었다. 읽으면서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

 

 

- 정보라, 『저주토끼』, 아작,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