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날것의 무언가가 나를 치고 가기를

시월의숲 2022. 6. 6. 14:30

 

어린 시절 동네 어르신이 마실을 올 때마다 할머니가 그이를 향해 "바깥이 소삽하오. 얼렁 들어오시오."라고 중얼거리듯 내뱉던 말에서 묻어 나오던 떨림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당신이 쓰던 소삽하다는 말은 두 가지 뜻을 지녔다.(···) 그 한 가지는 '바람이 차고 쓸쓸하다'이고 다른 한 가지는 '길이 낯설고 막막하다'이다. 바깥이란 그런 곳이다. 바람이 차고 쓸쓸한 날이 아니어도 낯설고 막막하며, 낯설고 막막하지 않더라도 바람은 차고 쓸쓸하다.(123쪽, 손홍규, <벤 야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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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왔다. '소삽하다'와 '허우룩하다'. '소삽하다'는 바람이 차고 쓸쓸하다, 길이 낯설고 막막하다는 뜻이었고, '허우룩하다'는 매우 친하게 지내던 사람과 이별하여 텅 빈 것같이 허전하고 서운하다는 뜻이었다. 둘 다 어딘가 쓸쓸함이 맴도는 단어였는데, 이는 작가가 익숙했던 장소를 떠나 먼 타국에 도착했기 때문에 드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었으리라. 

 

그 단어가 들어 있었던 책은, '느리고 낯설게, 작가들의 특별한 여행수첩'이라는 부제가 붙은 <누구나, 이방인>이라는 책이었다. 말 그대로 여러 작가들의 해외 여행기(엄밀히 말해 체류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 관광을 위해 간 것이 아니라 얼마간 생활을 하러 간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를 실어놓은 책이었다. 

 

여섯 명의 작가들이 각자 자신의 목소리로 써 내려간 여행기를 읽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작가'라는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그들이 떠난 나라, 알래스카, 폴란드, 몽골, 터키, 카리브 해, 라오스는 다른 어느 곳보다도 인상적으로(혹은 문학적으로) 다가왔다. 하긴, 어느 나라든 그러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모두 이곳을 떠나면 '누구나, 이방인'이 아닌가. 그렇게 이방인의 시선으로 본 나라들이 낯선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여섯 편의 여행기가 모두 작가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김미월의 <몽골에서 부친 엽서>라는 제목의 몽골 여행기가 기억에 남는다. 몽골어로 '테힌 조그솔'이라고 부르는 '산양이 멈추어 선 곳'에 얽힌 이야기는 많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다.

 

"몽골어 '테힌'은 '산양'을 뜻하고 '조그솔'은 '멈추어 선 곳'을 뜻한다. 산양은 늙으면서 뿔이 점점 커지고 무거워진다. 그 무게가 견디가 어려울 정도가 되면 산양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벼랑 꼭대기에 이르면 뿔의 무게에 눌려 그곳에서 떨어져 죽는다고 한다. 그 벼랑을 몽골 사람들은 '테힌 조그솔'이라고 부른다."(110쪽, 김미월, <몽골에서 부친 엽서>)

 

다시, '소삽하다'와 '허우룩하다'로 돌아가자. 내가 읽었던 모든 여행기에는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낯선 곳에서 느끼는 쓸쓸함, 고독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터키를 다녀온 손홍규가 썼듯, 바깥이란 그런 곳이 아니겠는가. '바람이 차고 쓸쓸한 날이 아니어도 낯설고 막막하며, 낯설고 막막하지 않더라도 바람은 차고 쓸쓸한' 곳. 그러나, 끝내 소삽하고, 허우룩한 심정이 되고 말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들은 왜 그렇게 '바깥'으로, 낯선 곳으로 떠나려 하는 것일까. 

 

"내가 신뢰해야 하는 건 어쩌면 그 실망의 예감 인지도 모른다. 충족될 수 없는 기대. 만끽될 수 없는 이미지. 결핍감을 불러일으키는 간극. 아는 만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는 만큼 느낄 수 없음을 느끼게 만드는 빈틈. 그 틈으로, 날것의 무언가가 나를 치고 가기를. 거기에 나의 뱃길이, 나의 루앙프라방이, 나의 겨울이 있기를."(205쪽, 신해욱, <루앙프라방행 슬로우 보트>)

 

어쩌면 신해욱의 저 문장들이 내 의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낯선 곳에 던져졌을 때야말로 평소와는 다른, 많고 다양하며 때로는 깊은 생각들에 잠길 수 있다는 것이다. 소삽하면 소삽한 대로, 허우룩하면 허우룩한 대로. 그 감정의 빈틈으로 '날것의 무언가가 나를 치고 가기를' 나또한 바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