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속의검은잎

단상들

시월의숲 2023. 1. 18.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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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년 정도 된 거 같다. 당시 공항 면세점에서 산 지갑을 지금까지 쓰다가 이젠 좀 낡았다 싶어서 작년 말 여행을 가면서 공항 면세점에서 똑같은 브랜드(디자인은 좀 다른)의 지갑을 샀다. 어째,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브랜드의 지갑을 '공항'이라는 같은 공간에서 사게 될 줄이야.

하지만 사놓고도 아직 원래 있던 지갑을 계속 사용하고 있었는데, 나는 오늘까지도 아무런 인지를 못하고 있다가 문득 책상 서랍에 케이스 채 고이 들어있는 지갑을 보고 나서야, 아, 내가 지갑을 샀었지, 하고 깨달았다. 굳이 살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 뭐, 언젠가는 쓰게 되겠지만.
(202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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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건 나만의 통과의례가 아닐까 싶다. 새해만 되면 어김없이 어딘가 탈이 나는 것을 보면. 어제는 오후부터 몸이 이상했는데, 겨우 퇴근을 해서 집으로 와 저녁도 못 먹고 바로 누웠다. 갑자기 열과 오한이 나고, 목이 뻐근해지고, 속이 매스꺼웠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식은땀이 나 몇 번이 잠에서 깨었다. 오늘 아침에 일정이 있었는데, 취소를 해야 하나 몇 번이나 고민했다. 다행히 아침이 되자 몸이 조금 나아져서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피로가 누적되었기 때문인지, 체한 것인지, 음식이 상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정말이지 나 자신이 싫어졌는데, 앞으로 더 싫어질 일만 남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계속 싫어질 나 자신에게 좀 너그러워져도 되지 않을까? 어쨌든 나에게는 이제부터가 새해로구나. 새삼스럽지만 안녕, 새해!
(202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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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째 계속 이런저런 핑계로 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있는데, 오늘 저녁도 시켜 먹을까 하다가, 이젠 그것도 지겹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라면으로 대충. 먹고사는 게 일이라면, 나는 지금 잘 못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내겐 식탐이 없다는 것 정도일까.
(202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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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여행의 본질이란 공기를 마시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기억은 분명 사라진다. 그림엽서는 색이 바랠 것이다. 하지만 공기는 남는다. 적어도 어떤 종류의 공기는 남는다.

- 무라카미 하루키

그래, 그런 것인지도.
그때 그 시간과 공간 속에 있던 어떤 종류의 공기는 분명 내게 남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202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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