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내가 살던 곳. 마당 한편에 따로 세워져 있던 재래식 화장실. 환한 대낮에도 노란 백열등을 켜야 했던 그곳. 종종 화장실에 빠지는 악몽을 꾸곤 했던. 코를 틀어막고 바닥을 조심하며 화장실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눈앞에 보이던 낡은 나무문.
나무를 거칠게 잘라 만든 작은 문에는 진한 색깔의 옹이들이 여러 개 박혀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뭉크의 '절규' 같았던. 어렸던 나는 뭉크를 알지 못했으므로, 그것은 그저 사람이 아닌 귀신의 얼굴처럼 보였다. 나는 그 화장실에서 절규를 알지 못한 채 절규했으니, 그것이 내 공포의 근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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