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떤 새해맞이

시월의숲 2023. 1. 6.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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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자도 자도 끝이 없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비행기에서 14시간 정도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도, 인천공항에서 집까지 계속 졸았다. 그리고 지금 또 자야 한다. 물론 잘 수 있다. 잠이 온다. 열흘 정도 집을 비우고 돌아오니 보일러가 고장 나 있다. 그래도 자야겠지. 일단은. 참, 오늘은 2022년 12월 30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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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전화를 걸어서 보일러 수리 예약을 했다. 주말이라서 월요일이나 되어야 올 수 있다고 기사는 말했다. 나는 알았다고 했다. 그 사이 2022년이 가고 2023년이 왔다. 1월 2일 월요일이 되었지만, 온다던 보일러 수리 기사님은 오지 않았다. 새해에 나는 새 업무를 맡게 되었고, 그래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여행의 여파도 있었다). 퇴근 시간이 지나 문득 생각이 나 전화를 해보니, 알림을 해놓지 않아서 잊고 있었단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보일러 회사의 직원이 아니던가? 내일 꼭 와달라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다. 화가 나고, 춥고, 좀 서글펐다. 또 전기포트로 물을 데워서 머리를 감아야겠구나 생각하니 순간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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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두툼한 털옷을 꺼내 입었다. 실내화를 신고 있지만 양발을 벗고 있으니 발이 좀 시렸다. 작은 담요를 다리에 칭칭 감았다. 누가 보면 (거짓말 좀 보태서) 에스키모인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이것보다 두 배는 더 춥게 살았던 것 같은데, 그런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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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방언에 '포시랍다'는 말이 있다. 고생을 해보지 않고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아서 조금만 힘들어도 못 견디는 사람을 비아냥대는 말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왜 그 단어가 갑자기 떠오른 거지? 그래, 코가 안 시린 게 어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