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고리

우리가 영영 작별하는 건 아니겠지요

시월의숲 2023. 3. 22. 23:37

 

출장을 다녀왔다. 호텔은 그 지역에서 꽤 유명한 산의 초입에 있었다. 체크인을 한 후, 주변 숲을 걸었다. 책을 들고 나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으나, 날이 쌀쌀하여 그 생각은 이내 사라졌다.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 국밥집에 갔다.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에게 국밥은 얼마나 은혜로운 음식인지.

 

호텔로 돌아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천천히 씻었다. 결국 가져간 책(‘작별들 순간들’)은 읽지 못했다. 객실의 스탠드 불빛은 오로지 잠을 위해 존재하는 듯, 책을 읽기에는 너무 어두웠다. 이것은 핑계인가? 어쩌면 나는 스스로 그 책의 마지막을 유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작별의 순간을?

 

‘작별은 바로 지금, 우리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장 궁극의 사건이었다.’라고 작가는 썼다. 그래, 심지어 내가 그것을 읽지 않을 때조차 나는 그것과 작별 중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영영 작별하는 건 아니겠지요!’ 나 역시 작가와 마찬가지로 외치듯 말한다.

 

(2023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