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당연하고도 힘차게, 쓸쓸한 자는

시월의숲 2024. 4. 7. 22:48



이 책은 제발트가 인상 깊게(본인에게 깊은 영향을 준) 읽거나 본 여섯 명의 작가들(소설가이거나 화가)에 대한 글이다. 요한 페터 헤벨, 장-자크 루소, 에두아르트 프리드리히 뫼리케, 고트프리트 켈러, 로베르트 발저, 얀 페터 트리프가 그들이다. 내가 한 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보거나 읽었던 책의 저자라고 한다면 고작 장-자크 루소와 로베르트 발저뿐이다. 그래서일까? 다른 작가들보다도 그 둘에 관해서 쓴 글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로베르트 발저는 나 역시 흠모해 마지않는 작가여서 제발트가 그에 대한 애정을 품어왔다고 고백하는 대목에서는 마치 운명의 이상형을 만난 것 같은 친밀함을 느꼈다. 이로 인해 나는 제발트뿐만 아니라 발저 역시 더욱 특별한 존재로 느끼게 되었다.
 
배수아는 '제발디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제발트에 관한 애정을 고백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여러 작가들이 제발트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페소아가 작가들의 작가라는 말을 들었는데, 제발트 역시 그러한 것일까? 무엇이 제발트를 특별한 존재로 느끼게 하는가? 그러니까 뭇 작가들을 매료시킨 제발트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생각건대 어쩌면 이런 것이 하나의 설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나는 제발트가 쓴 로베르트 발저에 관한 글을 읽고 난 후, 공교롭게도 누군가 올린 발저에 관한 짧은 글을 이어서 보게 되었다. 순간 제발트가 발저에게 느낀 운명적(?) 친밀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모종의 끈으로 이어져 있는 것 같은 그 느낌을. 우연을 우연하지 않게 만드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제발트가 아니던가. 제발트를 알고부터 어떤 종류의 일들은 전혀 상관없는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로베르트 발저는 어떤가. 제발트의 글을 읽고 발저의 <툰의 클라이스트>를 다시 읽는다. ‘그렇다, 그는 불행하지 않다. 쓸쓸할 수 있는 자야말로 행복하다고, 그는 남몰래 생각한다. 당연하고도 힘차게, 쓸쓸한 자는.’
 
로베르트 발저에 대해서 제발트는 이렇게 말한다.
 
그토록 그늘 속에 잠겨 있으면서도 펼치는 페이지마다 더없이 다정스러운 빛을 뿜어내는 글을 쓰는 작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한 순수한 절망에서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항상 같은 이야기를 쓰지만 절대로 반복하는 것은 아니며, 미세한 부분에서 예리함을 발휘하는 자신의 생각에 스스로 놀라워하고, 지상에 확고하게 발을 디디고 있지만 공중에서 주저 없이 자신을 놓아버리는 그런 작가, 읽는 도중에 벌써 해체되기 시작해 몇 시간 뒤에는 글 속의 하루살이 같은 인물과 사건, 사물들이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지는 산문을 쓰는 작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 이렇게도 말한다.
 
‘조용히 공중을 여행하기 위해 로베트르 발저는 태어났다. 그는 언제나 그의 모든 산문에서 무거운 지상의 삶을 넘어 더 자유로운 왕국으로 사뿐히 날아 조용히 사라지려 한다.’

 

제발트와 함께 로베르트 발저라는 숲을 산책하는 시간은 쓸쓸하면서도 무척이나 행복했다. ' 쓸쓸할 수 있는 자야말로 행복하다고', 나역시 남몰래 생각한다. '당연하고도 힘차게, 쓸쓸한 자는.'
 
 
- '제발트, 『전원에 머문 날들』, 문학동네, 2021.' 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