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시월의숲 2024. 6. 11. 20:02

뭔가 희끗한 것의 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드니 사무실에 흰나비 한 마리가 날아다니는 게 보인다. 사무실에 나비라니!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온 것 같은데, 다시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잠시 컴퓨터 화면에서 눈을 떼고 흰나비의 머뭇거리는 비행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아니다. 내가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나비의 마지막을 생각하다니. 하지만 지금 내가 여기서 하는 것들은 모두 마지막이다. 7월부터는 낯선 곳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나비를 오해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는 나비는 내가 알 수 없는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비에게도 매 순간이 마지막이자 새로운 시작이겠지. 그래, 그렇게 생각하자. 세상 끝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는 마지막이라고. 너의 마지막에 대한,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은 익숙한 것이라고. 익숙해지지 않는 익숙함이라고. 그러니 많이 두려워하지는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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