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버지와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제비를 보았다. 한 마리가 아니라 꽤 많은 수의 제비들이 내 머리 위에서 날렵한 선을 그리며 날아다녔다. 참새나 비둘기와는 달리 제비의 비행은 허공을 매끈하게 가르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많은 제비들이 어디서?
제비들을 보고 있으니 오래전 내가 아이였을 때 할아버지 집 마루 위에 둥지를 틀고 살았던 제비가 떠올랐다. 마루에는 늘 제비들이 날아다니며 떨어뜨린 흙이나 짚 따위가 떨어져 있었다. 할머니는 연신 마루에 떨어진 흙을 닦으면서도 귀찮은 기색이 없었다. 겁도 없지. 제비는 어째서 가장 위험한 동물인 인간의 집에서 함께 살 생각을 했을까.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나와 내 동생은 제비 가족을 해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제비들은 친구 따라 강남 간 줄 알았는데?"
"그게 무슨 뜻이에요?"
"왜 강남 제비라는 말 못 들어봤냐?"
"......"
나는 아버지의 뜬금없는 아재개그에 그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4) | 2024.06.11 |
---|---|
꽃의 향연 (0) | 2024.05.21 |
에곤 쉴레를 좋아하세요? (0) | 2024.04.28 |
죽음이라는 현상 (0) | 2024.04.09 |
꽃의 부름 (0) | 2024.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