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숲에선 새끼 곰이 깨어났습니다. 자는 동안에도 키는 자랐습니다. 가슴의 흰 반달도 커졌습니다. 곰, 발톱도 길었습니다. 두껍고 새카맣습니다. 자던 자리가 동그랗습니다. 엄마 곰은 어디 가고 없습니다. 빠진 이빨들 흩어져 있습니다. 곰, 외로움 있습니까? 곰, 일어나 앉습니다. 엄마와 약속한 일이 기억납니다. 산골의 다람쥐, 멧돼지, 토끼, 뱀들도 엄마랑 약속합니다. 긴 겨울이 지나면 깨어나기로 합니다. 따뜻해지면 맛있는 것을 먹기로 합니다. 꽃이 피면 같이 놀기로 합니다. 곰, 눈 비비고 기지개도 켜봅니다. 혼자 가만히 엄마 엄마 불러도 봅니다. 곰, 두려움 알고 있습니까? 몸이 가렵습니다. 앞으로 구르고 뒤로도 굴러봅니다. 곰, 배가 고프고 목도 마릅니다. 구멍 밖에서 쑥냄새, 취냄새 향긋하게 불어옵니다. 졸졸 물 흐르는 기척 들려옵니다. 무엇이든 찾으러 나가야겠지요? 천둥처럼 쾅쾅 울리는 소리, 어디에서 시작되었나요? 곰, 슬픔 알지요? 여기는 세상입니다. 동면에서 갓 깨어난 곰을 발견하면 절대로 다가가지 마세요.
- 임유영, 「단단」 전문(『오믈렛』 수록)
*
문득 눈을 떴는데, 세상이라는 곳에 나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다. 그 기분을 뭐라 표현해야 할까?
곰, 외로움 있습니까?
곰, 두려움 알고 있습니까?
곰, 슬픔 알지요?
여기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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