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995

브로큰 발렌타인 - 알루미늄

언젠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내 목소리를 녹음하여 들어본 적이 있다. 그건 끔찍하고도 괴이한 경험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내가 내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낀다. 내 입을 통해서 듣는 내 목소리는 완전한 타인이 듣는 내 목소리와는 다르다. 그 괴리감과 이질감은 나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마치 영상에 찍힌 내 모습을 보고 나와는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듯이. 그건 내 안의 또다른 나인가? 그건 나만이 알고있다고 '믿은' 나라는 확고한 정체성에 흠집을 낸다. 내가 알고 있는 '나'가 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건 간에, 그것은 '하나'의 목소리'이자 '하나'의 나 자신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진실은 그 '하나'가 결코 '한 개'..

오후4시의희망 2013.07.05

앙드레 드 리쇼, 『고통』, 문학동네, 2012.

앙드레 드 리쇼의 『고통』은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욕망 때문에 발생하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다. 욕망은 부재, 혹은 결핍에서 오고, 고통은 욕망이 채워지기 전에도, 채워지고 난 이후에도 찾아온다. 욕망은 본능적인 것이므로 우리는 욕망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받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무언가를 욕망하는 한 우리의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욕망은 채워지고 나면 더는 욕망일 수 없으나, 우리의 욕망은 사라졌다고 생각되는 순간 또 다른 욕망이 찾아오므로, 그것은 영원히 반복되는 운명의 굴레와도 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계속 욕망하는 한 우리는 계속 고통받을 것이다. 신경계의 자동반사와도 같은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피 속에 녹아있어 우리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

흔해빠진독서 2013.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