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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린비, 2011.

책은 민주주의와 같다. 그것은 하나의 이견이다. 뭔가를 제안하든 반박하든 책은 차이를 표방한다. 따라서 책을 쓰는 일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민주주의를 실천한다.(4쪽)  *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변치 않는 덕목이 있다면 그것은 비판일 것이다. 비판이란, 그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일 때조차, 민주주의자의 의무에 가까운 특권이다. 민주주의가 더 이상 사랑할 만한 것이 되지 못했을 때, 민주주의자는 민주주의와 대결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구해야 한다. 진리에 기댐으로써가 아니라 진리를 의심함으로써 우리는 진리에 대한 사랑을 표하지 않던가. 민주주의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5쪽)  *  민주주의에는 확실히 다른 정체들에서는 볼 수 없는 원리상의 난점들이 있다. 가령 민주주의에서 데모스는 통치자이..

아무것도 아닌 자의 상상

한결같은 단조로움, 지루하고 똑같은 일상, 어제와 오늘의 결코 다르지 않음, 내가 살아 있는 한 이것은 나를 영원히 떠나지 않으리라. 그 덕분에 내 영혼은 생생하며, 작은 것들이 주는 자극을 크게 느낀다. 우연히 눈앞을 날아가는 파리 한 마리에 즐거워하고, 어느 거리에선가 간간히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흥겹고, 사무실 마감시간이 다가올 때의 엄청난 해방감, 그리고 휴일이면 끝없는 평안과 휴식을 만끽한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되는 나 자신을 상상할 수 있다. 내가 실제로 뭔가 대단한 존재였다면 나는 그것을 상상할 수가 없으리라.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중에서   * 이어서 페소아는 썼다.  "보조회계원은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는 꿈을 꾼다. 하지만 영국 왕은 그런 꿈을 꿀 수..

불안의서(書) 2025.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