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아 26

프란츠 카프카, 『꿈』, 워크룸, 2014.

"문학적으로 보자면 내 생은 지극히 단순하다. 꿈과 같은 내면의 삶을 묘사하는 일이 운명이자 의미이고, 나머지는 전부 주변적인 사건이 되었다. 삶은 무서울 정도로 위축되었고, 점점 더 계속해서 위축되어간다. 그 어떤 일에서도 이처럼 큰 만족감을 얻지 못한다."(29쪽) 꿈을 기록할 수 있을까. 꿈을 꿀 때는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만져질듯 생생한 느낌에 사로잡히지만, 깨고 나면 꿈의 잔해, 앙금처럼 남겨진 감정의 찌꺼기만이 남아 있는데. 원인과 결과도 없고, 줄거리도 없으며 언제나 어떤 상황 속에 던져진 채 쫓기는 장면만이 가까스로 생각날 뿐인데. 왜 쫓기는지, 무엇 때문에 그리 급박한 상황에 내몰려야 하는지, 왜 불안함과 슬픔만이 느껴지는지 알지 못한 채. 알 수 없기 때문에, 꿈을 꾸는 동안..

흔해빠진독서 2014.06.28

배수아,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자음과모음, 2013.

"그리고 주로 공연이 끝난 다음, 저녁때 오디오 기기를 끈 다음에 들려온다는 거죠?" "네" "그러면 혹시 뒤에 남게 된 소리의 그림자가 아닐까요" "소리의 그림자라면?"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 같은 것."(10~11쪽) * 두터운 시멘트 건물 벽면과 육중한 철제와 거대한 유리 시설물, 대지 전체를 뒤덮은 뜨거운 아스팔트에서는 이글거리는 화장장의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드러난 살과 피부, 눈동자와 털과 같은 온갖 동물성 유기물들이 땀과 함께 열기에 연소되면서 거리는 온통 분화구처럼 움푹한 화염의 구덩이로 변했다. 어느 방향으로 얼굴을 돌려도 수천 개의 불화살이 눈과 피부에 치명적인 화상을 입혔다. 수천 개의 별들이 동시에 폭발했다. 유성들이 불타고 가스가 연소하며 어두운 재가 천체의 궁륭에 달라붙었다. 모..

배수아, 《올빼미의 없음》, 창비, 2010.

어떤 이들은 죽은 자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지금 페리 선착장에서 표를 사고 있으리라. 어떤 이들은 꿈에 대해서 에쎄이를 쓰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과 상관없이 잠들기를 원한다.(73쪽, 「올빼미」 중에서) *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표현은 누가 가장 먼저 사용했을까. 뛰고 있는 심장, 살아 있는 것을 사로잡았을 때와 그렇게 사로잡혔을 때의 감정을 잘 아는 자인 그들은 사냥꾼이었을까. 그들이 따뜻한 새끼 사슴이나 토끼를 사로잡듯이. 그들은 희생물의 눈동자 속에 자기 자신을 최초로 이입시킨 자. 어디에도 출구가 없음이 너무나 명백하여 차라리 달콤하기까지 한 절대절망의 상태를 자신 안에서 상상으로 그려 보인 자. 그것을 표현이라는 방식으로 재현해낸 자들. 그렇듯 그것은 어쩌면 사로잡힌 자가 아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