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한밤의 귀뚜라미 음악회

시월의숲 2005. 3. 20. 14:33

 

이제 입추도 지나고, 말복도 지났습니다.

지금은 처서를 기다리고 있어요.

이 뜨거운 여름 속에서도

가을은 이미 시작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제 저녁에는 잠이 안와서

낮에 읽다 덮어둔 소설책을 펴들었어요.

시간은 자정이 훨씬 넘어 있었고

창은 모두 열어놓은 상태였죠.

한 두줄 읽었을까, 순간

호르륵, 호르르륵 하는 소리가 제 귀를 간지럽히더군요.

처음엔 무슨 소린지 몰랐는데

귀기울여 생각해보니, 귀뚜라미 소리였어요.

물론 어두워서 보이진 않았지만

그 소리만은 생생히 제 가슴속에 울려퍼졌습니다.

창가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한동안 그렇게

귀뚜라미 음악회를 감상했어요.

벌써 가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까,

귀뚜라미 소리가 마치 가을을 부르는 마법의 주문 같았어요.

자연스럽게 저는 그 마법에 걸렸고,

하루동안 쌓인 피로가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귀기울여 보세요.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2004.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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