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던가, 나는 안개가 자욱이 낀 어두운 골목길을 혼자 걸어가고 있었다. 키낮은 집들은 이미 불이 꺼진지 오래고, 어둠 속에서 마땅히 길을 비춰주어야 할 가로등은 잊혀질만 하면 하나씩 나타나곤 했었다. 아마 그때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서늘한 밤기운에 얇게 입은 옷을 여미며 발걸음을 재촉했겠지. 여느날과 다를바 없는 그날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지척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하게 낀 안개 때문이다. 그날은 왜 그리 안개가 많이 끼었는지. 잔뜩 물기를 머금은 공기가 내 코로 스며들때면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불과 몇 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가로등 불빛은 안개 때문에 마치 달무리를 이룬 것 같았다. 안개에 갇혀버린 기분. 나도 안개가 되어버릴 것 같은 그 기분.
프랑스 소설가인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는 내내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이 소설의 내용이 기억을 잃어버린 주인공이 그 바스라진 기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그것을 그려내고 있는 작가의 목소리가 마치 안개의 언어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잊혀진 과거의 기억을 자신을 둘러싼 몇몇 사람들과 그들이 준 단서들(사진이나 수첩, 혹은 주소 같은 것)을 통해 추적해 간다. 자칫 통속 추리물처럼 흘러갈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작가 특유의 간결함과 성찰적이고도 묘한 여운을 남기는 문체 때문에 상당히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망각하고 있던 기억이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이 소설이 결코 개인적인 기억 찾기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은 끊임없이 망각하는 동물이면서도 또 끊임없이 기억하길 원한다. 아마도 과거의 기억 속에서 진정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인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면에서 미래는 내가 만들어가야 할 '그 무엇'이지만, 과거는 내가 지금 존재하고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거의 기억이 결국 사진 속 배경인물들처럼 無일 뿐이라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주인공에게 타인의 사진 속 배경인물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그가 진정 '나'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래도 소설 속 주인공은 자신이 예전에 알았던 누군가를 찾아나서며 자신이 예전에 살았을지도 모를 집을 찾아 나선다. 그것이 그의 존재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서성이다 보면 알게 될까? 내가 누구인지,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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