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장마

시월의숲 2007. 6. 22. 11:53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에 갔다 왔다. 어제와 그저께 꼬박 이틀, 나와 내 친구들은 그를 위로하고 그의 아버지의 시신을 옮겨주었다. 그의 아버지는, 유언대로 화장을 하고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삶이, 역사가 그렇게 갔다. 영정 사진으로 본 친구 아버지의 얼굴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 낯익었다. 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을 사진 속의 쉰 남짓 된 남자의 얼굴은 무척이나 까맣고 주름져 있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간이 나쁘셔서 통근 치료를 하시던 중에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한다. 내게는 먼, 타인의 죽음 앞에서 나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것이 잠을 못잔 피곤함 때문인지, 죽음이라는 일상의 아무렇지 않음 때문인지,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탓인지, 그것이 원래 죽음의 무게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그냥 마음이 자꾸 무거워지고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고작 이틀인데 한 두 달은 지난 것 같은 기분. 죽음은, 잠시 동안이지만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일까? 갑자기 얼마간 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그에 맞춰 장마가 시작되었다. 남겨진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 흘러흘러 비로 내리는 것은 아닌지. 화장터에서 나는 연기는 죽은 사람들의 혼은 아닌지. 그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 남겨진 사람은 알지 못한다. 그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갑자기 화장터에서 본 아기의 얼굴이 떠오른다. 사람은 그렇게 태어나고 또 그렇게 죽는 것인가. 태어나는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듯 죽는 순간 또한 알 수 없음을. 때로는, 슬픔을 참는 것 보다 마음껏 슬퍼하는 것이 슬픔을 더는 방법일 수도 있음을 이젠 알 것 같다.

 

지루할 것임이 분명한 이 장마도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그러니 마음껏, 있는 힘껏 울어라, 울어. 나는 분명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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