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자전거

시월의숲 2007. 7. 29. 21:38

나는 아직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뭐? 아직 자전거를 못 탄다고? 여태껏 그것도 안 배우고 뭐했냐?”는 식이다. 단 한번도 “그럴 수도 있지 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자전거를 못타는 것이 큰 죄라도 된다는 말일까?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적이 없지만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자전거를 못 타는 것이 큰 결함이라도 되는 양 이야기한다. 그래서 처음엔 아무렇지 않게 말하던 것도 이제는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것이 창피스러운 일인가?

 

물론 사람들의 반응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타고 다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세상에서 나 홀로(정말 나 혼자가 아닐까?) 자전거를 못 탄다는 사실은 (인정하긴 싫지만) 그리 내세울 만한 일이 아닌 것도 같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여태껏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 타지 않았던 것일까. 그래, 분명 나는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그래서 못타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자전거 정도야 금방 배울 수 있지만 나는 왜 어렸을 때부터 그럴 기회가 없었을까?

 

생각해 보니 내가 자전거를 타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자전거를 탈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모두가 필요에 의해서 타는 것은 아니다. 건강상의 이유도 있을 것이고, 자전거를 정말 타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 때문이기도 할 것이며, 또 학창시절, 학교가 멀다는 이유로 자전거가 필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집에서 학교가 멀지도 않았으며(초등학교는 집에서 불과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친구들의 자전거 타는 모습이 부럽지도 않았다. 그래, 나는 자전거가 필요치 않았고 흥미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 창피를 무릅써야 하는 일이 되다니! 그렇다고 그 사실을 스스로 창피해하지는 않는다. 그냥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애써 고백하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다만 그것이 성격적, 신체적 결함(적어도 그러한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을 하는)이라도 되는 냥 생각하는 사람들의 하나같은 반응이 답답하고 때론 질리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자전거 타는 것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다. 흥미가 없다는 것과 하기 싫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니까. 그리고 자전거에 발도 대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어렸을 때, 세발자전거를 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것도 자전거냐, 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어쨌거나 자전거가 아닌가, 바퀴가 세 개나 달린. 두 발 달린 자전거를 탄 기억은... 아마도 없는 것 같다. 다만 때때로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모는 자전거의 안장에 앉아서 어디론가 가던 기억이 난다. 물론 어디에 갔었는지 기억나질 않지만 말이다. 걸어 다닐 때와는 다른 중력의 느낌과 그로인한 설렘, 얼굴에 부딪히는 상쾌한 바람, 두 손으로 아버지의 허리를 꽉 쥐고 넓은 등에 얼굴을 묻었을 때 풍겨오던 체취 같은 것들...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데 자전거와 인연이 멀것 같은 내게도 자전거가 생겼다. 예전에 내가 아르바이트하던 가게의 주인아저씨가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며 내게 주신 것이다. 자전거가 있어도 나쁠 건 없겠지 생각하며 엉겁결에 받긴 했지만 이것이 과연 내게 무슨 소용인가 생각했다. 그 이후로 한 번? 그 자전거를 끌고 운동장에 나가서 타보긴 했으나 그것이 전부였다. 주인을 잘못만난 자전거는 마음껏 달려보지도 못하고 마당 한켠에서 녹슬어가고 있다. 내가 아니었다면 온 거리를 활보하며 씩씩하게 달렸을 자전거인데... 그 자전거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달리지 못하고 녹슬어가는 자전거는 쓸쓸함을 풍긴다. 모든 잊혀져가는 것들이 그러하듯. 하지만 내가 자전거의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예 그때 자전거를 받아오지 말걸 하는 후회가 든다. 그래도 어쩌랴.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자전거가 필요 없으며 흥미조차 없으니.

 

내게 자전거가 필요해질 날이 올까? 안타깝게도 앞으로 그런일은 더욱 없어질 것 같다. 하지만 자전거가 가진 아날로그적 낭만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자전거 탄 풍경에의 기억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보편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여,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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