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는 기관은 퇴화되는 것처럼 글씨도 그런 것일까?
엄밀히 말해 글씨는 기관이라고 할 수 없으니 글을 쓰는 손가락이라고 해야하나. 손의 기능 중 하나인 글 쓰는 기능이 사라져가고 있는듯 하다. 며칠 전 일기를 쓰다가 깜짝 놀라서 눈을 비비고 다시 내가 쓴 글씨를 들여다 보았다. 예전에는 잘 쓴다고 칭찬까지 받았던 내 글씨체가 엉망이 되어버린 것이다. 글을 쓰기 싫었던 것도 아닌데... 하긴 요즘에는 종이에다 무언가를 끄적이는 일 자체가 줄어드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보니 오른손 중지와 엄지에 있던 굳은살도 사라졌다. 오랫동안 손으로 직접 글을 쓰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어쩌면 이건 좋다, 나쁘다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엉망으로 쓴 내 글씨를 바라보니 왠지 측은한 기분이 든다. 사라져버린 손가락의 굳은살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언가 자꾸 사라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게 삶이란 것일까?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라져버린 만큼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지. 분명 얻은 것도 있을터인데, 나는 왜 자꾸 사라져버린 것에 연연하는지, 왜 때때로 그것이 그리도 안타까운 것인지.
그래도 뒤돌아보지 말자.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앞을 바라보며 열심히 달리고 부대끼는 일. 사라진 것은 분명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닌, 사라짐으로 인해 어딘가로 스며든 것이라 믿자. 사라졌던 내 손가락의 굳은살도 다름아닌 아닌 내 안에 스며들었음을. 그리하여 어디선가 새로운 굳은살이 돋아나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나를 내 삶의 생채기에서 종종 보호해주고 있음을 믿자. 중요한 것은 글씨의 모양이 아니라 글에 담긴 내용일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