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린 후 집에 도착하여 읽으려고 보니 앞의 몇 장이 인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미리 확인해 보지 않은 내 어리석음을 탓하며 다시 책을 반납하고, 서점에 가서 직접 책을 샀다. 책의 두께에 비해 값이 저렴하다고 생각되었기에 약간 횡재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책 사는 데는 돈을 아까워하지 말자는 것이 평소 내 신념이지만 어쨌거나 돈이 나가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뭐, 빌려보는 것도 돈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긴 하지만.(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우선, 제목만 들어 알고 있던 이 소설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는 생각에 약간 설랬다. 어렸을 때,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여기저기서 제목만 들었던 문학작품들을, 크면서 하나씩 읽어나가는 것은 마치 과거로의 탐험 같기도 하고 보물찾기 같은 기분도 들어서 좋아하는데, 이 <앵무새 죽이기>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그리도 유명한 것인가, 하는 궁금증은 마치 중독처럼 여러 고전들을 읽게 만든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1930년대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의 메이콤이라는 도시에서 사는 한 소녀의 성장기이다. 흑인들이 차별을 받던 시대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교수형에 처해질 한 흑인 남자를 변호하는 중년의 백인 남자. 그 백인 남자의 딸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이다. 소설은 그 소녀의 시점으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독자에게 그려 보인다. 작가가 어린 소녀의 시점으로 소설을 이끌어가는 것은, 아직은 편견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깨끗한 시선으로 어른들과 그들의 세계를 나타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눈으로 보면 이 세계는 얼마나 많은 오해와 편견과 불의가 판치고 있을 것인가. 우리는 자라면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관습들을 하나씩 익혀나간다. 때론 다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차별하기도 하는 나쁜 습관까지 배우기도 한다. 그러한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녀의 아버지인 애티커스의 말처럼 타인의 입장이 되어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일도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려는 노력만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충분히 터무니없는 오해의 늪에서 빠져나와 상대방을 아무런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편견을 가지지 않는 인간이 되는 것.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임을 자각하는 것. 인간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을 허무는 것. <앵무새 죽이기>는 그러한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린 아이의 시점에서 소설이 진행되기 때문일까, 재밌고 쉽게 읽혔다. 소설은 흑백 갈등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비단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사람들 사이의 차별과 오해는 있어왔다. 그것은 조금씩 다른 형태와 모습으로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며 왔으며 지속적으로 갈등을 일으켜 왔다. 그러한 모순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속성 때문에 이 소설은 아직까지 살아있으면서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일 게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이 그러한 것처럼.
사족
-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딜은 바로 트루먼 카포티를 모델로 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그들은 친구였으며 서로의 소설 속에 상대방을 모델로 등장시켰다니 정말 대단하고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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