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을 읽고

시월의숲 2007. 9. 5. 12:05

내가 몇 살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질 않지만, 오래전 <파리대왕>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어렸을 때 본 것은 - 특히나 그것이 인상 깊은 것이었다면 더욱 더 - 쉽게 잊혀지지 않듯이 그 영화도 그러했나 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영화의 영상이 떠올라 소설 읽는 것을 간섭했으니. 그것이 때론 소설 읽기를 방해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소설 속 묘사와 영화 속 영상이 교묘히 매치가 되면서 머릿속에서 한껏 파노라마가 펼쳐지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에 본 영화라서 영화와 소설 중에 어느 것이 나았다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소설을 충실히 영화화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뭐, 그것이 마냥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본전은 건진 것이 아닌가. 어떤 소설가는 소설보다 영화가 못하다고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서 줄거리를 소개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소설로서도 모자라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노벨문학상도 받았으며, 1954년에 나온 이 소설이 지금껏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으니까. 한마디로 고전이라는 말이다. 물론 다른 고전들도 그러하듯이 너무나 유명하기에 안 읽어본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각설하고, 모험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무인도에 떨어지게 된 소년들을 통해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무인도에서 벌어지는 소년들의 단순한 모험담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어둡고, 암울하며, 비극적이다. 어떻게 보면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는 결말이지만 그것은 단순히 결말만 놓고 봤을 때의 이야기이고, 소설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인간 본성에 대한 작가의 어두운 전망은 결코 그것이 해피엔딩이 아님을 말하는 것 같아 섬뜩하기까지 하다.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찬란한 문명은 과연 위대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 우리는 과연 자신 있게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요, 그러한 인간이 이룩해놓은 문명은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자신이 2차 대전에 참전한 경험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윌리엄 골딩은 무인도가 아니라 문명 세계에서도 인간의 야만성은 존재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느 글에서 그는 이 소설에 대해 이렇게 썼다고 한다. “... 마지막 장면에서 어른의 세계가 의젓하고 능력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그것은 섬에서의 어린이들의 상징적 생활과 똑같은 악으로 얽혀 있다. 장교는 사람 사냥을 멈추게 한 후 어린이들을 순양함에 태워 섬에서 데려갈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 순양함은 이내 똑같이 무자비한 방법으로 그 적을 사냥질할 것이다. 어른과 어른의 순양함은 누가 구조해 줄 것인가?”

 

문명과 야만을 대표하는 등장인물들과 소라와 안경, 멧돼지 사냥 등의 소재가 매우 상징적이고도 짜임새 있게 이루어져 있었다. 더도 덜도 할 것 없이 딱 그만큼이면 완벽하다고 생각될 만큼. 이 소설은 인간에 대한 암울한 비전을 담고 있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깊게 인간 본성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가지게 한다. 우리가 만들어온 수많은 전쟁의 역사를 봤을때 어쩌면 인간의 본성은 선보다는 악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우리는 우리 안의 어두운 면을 직시해야 하며 우리가 저지른 과오를 반성해야 한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은 그렇게 우리들이 가진 본성적 결함을 깨닫게 하고 반성케 한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했을 때 우리는 보다 나은 방향으로 한걸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