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한강, 『검은 사슴』을 읽고

시월의숲 2007. 9. 11. 18:57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랄까, 불덩이 같은 것이 솟아올라와 가슴이 뭉클해지고 급기야는 아려오는 느낌... 한강의 장편소설 <검은 사슴>을 읽고 났을 때의 느낌이 그러했다. 검은 사슴으로 비유되는 의선과 그녀의 불행한 삶, 그녀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개별적인 삶을 들여다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정해지게 되는 삶이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가, 허물어지기 쉬운가.

 

일생에 단 한 번 빛나는 태양을 보기 위해 지상으로 나가길 원하는 검은 사슴. 자신을 지상으로 대려가주는 댓가로 광부들에게 뿔이며 이빨을 다 빼앗기고 결국은 한 줄기 빛도 보지 못한 채 죽게 되는 검은 사슴의 이야기는 곧 의선의 삶이었으며, 그녀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의선이 고향에서의 기억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서서히 무너져가듯이, 그녀의 삶은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겁고도 힘겨웠다. 오로지 짙은 어둠 속에 자신을 내던진 광부의 일생처럼 그녀는 일생을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사라진 것은 아닌지. 하지만 그러한 어둠의 기억으로부터 뛰쳐나온 그녀가 다시 그 어둠 속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삶이란 그렇게 불가해한 것이란 말일까. 자신이 자라온 뿌리에의 기억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단 말일까. 가난과 남루한 행색과 죽음과 환멸만이 가득했던 그때 그 시절이, 공간이, 사람들이.

 

벗어나고자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삶에의 부조리함에 맞서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쉽게도 작가는 그것이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어렴풋이 그들의 삶으로부터 빛과 어둠, 삶과 죽음 그 사이에 있는 무엇을 슬며시 암시할 뿐이다. 작가 역시 그것이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며 다만 느껴지는 것일 게다. 내가 앞서 언급했듯, 소설을 읽고 가슴이 먹먹한 감동을 받은 것은 아마도 그러한 극단적인 것들 사이에 있는 무언가를 조금이나마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삶은,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사이의 줄다리기 같은 것인지도 모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