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 내가 내 삶을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한 듯, 착한 듯 스스로를 낮추고 묵묵히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억울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고 그것이 또한 최선의 길이라는 듯 한껏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내 삶을 스스로 증오하며 언젠가는 벗어나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한 적도 많았다. 나는 불행하다고, 세상이 나를 수렁으로 몰아넣고 허우적거리는 나를 보며 팔짱을 낀 채 비웃고 있다고, 삶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가슴을 쥐어 뜯으며 눈물을 삼키지 않았나. 하지만 그런 모든 다짐과 기원들이 결국엔 나 자신을 스스로 좁은 방안에 몰아넣고, 스스로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은 아니었나. 그동안 내가 불행하게 느꼈던 모든 사건과 순간들이 결국 나를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 묶는 쇠사슬은 아니었을까. 그런 자기기만의 그늘 속에서 스스로 의식하지 못한채 나는 그것이 주는 얄팍한 안락과 평온함에 젖어 급기야는 그것을 즐기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스스로 비극의 주인공인 양 온갓 슬픔과 절망과 고독과 폭력을 마치 후광처럼 머리에 두르고서. 그렇게 싫다면, 정말 죽을만큼 싫었다면 마땅히 그 곳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진정한 용기요 진심으로 나를 위하는 길이 아니었을까. 그 이중성. 싫어하면서도 한편으로 그것에 기대게 되고 바라게 되는. 몸소 현실과 부딪히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를 기만하며 삶을 유예하고 있는 그대여. 아, 가증스럽도다. 이것은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는 비겁한 자의 넋두리일 뿐. 그대가 두려워 할 자는 바로 그대이니. 소름이 돋고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두렵고 두렵도다. 이제껏 내가 내 삶을 속이고 있었다는 생각이, 나 자신이 한없이 비겁한 자라는 생각이 나는 죽을만큼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