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무사히

시월의숲 2008. 2. 9. 18:04

무사히 설이 지나갔다.

명절 때만 되면, 아니 친척들과 만나는 날만 되면 이상스레 조마조마하고 불안스런 마음 때문에 늘 신경이 곤두선 채로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바라지 않았나! 다행히 이번 설은 별 탈 없이 지나가게 되어 산을 하나 넘은 것처럼 마음이 놓인다. 아, 이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가족 간의 만남이 살얼음판을 걷는듯 불안한 일이라는 사실이!

 

우리 집의 경우를 보면, 부모 자식간의 사랑이라든가 형제간의 우애 같은 것들은 모두 허상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허상에 미련을 갇기 때문에 서로 상처받고 돌아서버리는 것이다. 그런 허울 좋은 명목에 구애받지 않으면 상처를 주거나 받지도 않을 것이고 힘들게 만나는 일도 하지 않을 터인데. 모든 것들이 내게는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마음이 없으면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억지 웃음을 짓는 일은 정말이지 피곤함, 그 자체이다.

 

하지만 피를 나누었다는 것이 그런 것일까? 내게는 불필요하고 소모적으로만 느껴지는 만남(서로 으르렁거리거나 차가운 얼굴을 할 뿐인)이 이렇듯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 도리라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왜 이리 웃음이 나오는 것인지. 왜 이리도 피곤하게만 느껴지는 것인지.

 

좀 전까지만 해도 피곤해서 쓰러질 지경이었는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 조금이나마 피곤이 풀린 것 같다. 자판의 경쾌한 울림 때문일까. 아니면 이것이 글의 힘인가? 아, 아, 아... 자고 싶다. 한 이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단 하나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오로지 잠 그 자체뿐인 순수한 잠에 푹 빠져들고 싶다. 깨어 났을 때의 세상이 지금과 비교해서 손톱만큼도 달라질 것이 없다 하여도.

 

내 변하지 않는 꿈은 무사히 사는 것이다. 단지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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