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고, 그래서
하늘은 내 머리 위에서 잔뜩 흐리고
조금이라도 파인 땅바닥은 온통 빗물을 가득 머금고
곡예하듯 이리저리 웅덩이를 피해 발을 디디다 보면
내가 마치 토끼가 된 것 같아 우스워, 그래서
황망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만 발을 헛디디고
바지는 흙탕물로 젖어버리고
내 기분도 따라 얼룩져버린다
괜히 지나가는 자동차의 꽁무니를
짜증섞인 눈길로 한껏 흘겨보고.
약속이 없어 집으로 들어온 나는
흙탕물이 튄 바지를 벗어내던지며
방안 컴퓨터 앞에 동그마니 앉아
무엇이든 써봐야 하지 않겠냐는 강박에
더 심란해지고,
더 우울해지고.
비는 오는데,
자꾸만 건조해지는 이 기분
자꾸만 딱딱해지는 이 기분
이렇게
횡설수설만 하고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