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슬픔을 가진다

시월의숲 2008. 4. 23. 18:32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슬픔을 가진다.

 

오늘 말을 더듬는 한 학생을 만났다. 고등학교 1학년인 그는 조금만 말을 많이 할라치면 영락없이 버벅거리며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재차 물으면 그 아이의 기분이 상할까봐 주의깊게 귀를 기울여 듣는데도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난감했다. 그는 나에게 무언가 열심히 말을 하려고 하는데 나는 전혀 알아듣지를 못하다니. 그 아이도 답답하고 나도 답답하고.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나 나나 서로 답답하고, 속상하고, 안타까웠음은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그 아이는 어머니와 새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새아버지의 존재가 그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듣고 보니 불현듯, 말을 더듬는 그 아이가 무척이나 측은하게 느껴졌다. 그 아이가 이런 내 오만한 동정심을 눈치챘다면 오히려 코웃음을 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똘똘해 보이는 얼굴이 더듬거리는 말투로 인해 일그러지는 순간의 표정을 보고 어찌 측은해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표정은 마치 클로즈업 된 사진처럼 내 눈, 아니 가슴에 선명히 새겨졌다. 그토록 짧은 순간에 그토록 한없는 안타까움이 고여있을수 있다니! 나는 슬퍼졌다.

 

공고에 다닌다는 그 아이가 피곤에 젖어 의자에 앉은지 불과 5분만에 골아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학창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느낀 이 정체불명의 슬픔은 어쩌면 그 아이 때문이 아닌, 그 아이를 통해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결여된 삶, 그 삶의 빈 곳을 파고드는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한없는 애정에의 갈망으로 점철돼 있던 그 시절. 지금도 결코 나아진 것이 없는...

 

말더듬 때문에 친구도 별로 없었다던 말을 듣고, 불현듯 나는 입을 벌리고 자고 있는 그 아이를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내가 나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서로의 슬픔을 나눠 가질 수만 있다면. 멀어져가는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슬픔을 가진 채 살아간다. 부디 그 아이도 자신의 슬픔을 잘 보듬어 안을 수 있기를. 자신의 슬픔에 자신이 먹혀버리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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