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내가 그렇게도 증오해 마지 않았던, 살기 위해 사는 내 모습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한다. 무덤덤한, 생기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지독히도 무기력한 모습. 언젠가 보았던, 오랜 시간 지독한 반복 속에 닳을대로 닳은 퀭한 눈빛의 어느 과장처럼. 말을 섞지 않고 그저 보기만 해도 힘이 쏙 빠져버리는, 엄청난 전염성을 가진 무기력함이라니! 아,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송장같던 그 모습!
그런데, 그런데 그토록 무섭고도 징그러운 무기력이 지금 나를 옭아매고 있다. 시시각각 내 의식을 잠식해 들어오는 이 엄청난 무기력이 나는 두렵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아니, 벌써부터 이러면 난 어떻하란 말인가. 누구든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일상은 위대하다. 하지만 그것은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무화시키는 그 위대한 반복이, 자칫 인간을 끝없는 무기력의 나락으로 빠트릴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개미지옥이며 늪이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하다. 과연 그 무기력의 끝은 어디일까? 끝이란 것이 있기나 할까? 무기력에 감염된 그 순간이 바로 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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