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존재의 재발견

시월의숲 2008. 4. 4. 20:56

'변덕이 죽 끓듯 한다'는 표현에 대해 생각한다. 왜? 이유가 없다. 그냥, 어느 순간, 불현듯, 머릿속에서 변덕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반사적으로 죽 끓듯 한다는 표현이 떠오른 것이다. 변덕이 죽끓듯 한다... 낡아빠진 비유가 아닐 수 없지만, 생각해보면 그처럼 딱 맞는 비유도 없다.

 

갑자기 변덕이란 단어가 생각났다고 했는데, 사실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플래닛의 스킨이나 음악 같은 것들을 비교적 자주 바꾼다는 생각에 변덕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그래서 변덕이 죽끓듯 한다는 표현이 떠오른 것이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생각해 낸 그 표현이 평소와는 다르게 나와 더 밀착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아무 생각없이 쓰는 말들이 어느 순간 기존에 내가 받아들이던 익숙함에서 벗어나 당당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내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마치 나 원래 이런 사람이었어, 라고 말하듯.

 

그 색다른 경험은 나를 즐겁게 한다. 그것을 새로운 발견이라고 명명하기에는 그 존재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므로 맞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존재의 드러남을 뭐라 불러야 좋을까? 색다른 깨달음? 각성? 재발견? 그래, 존재의 재발견이라는 표현이 좋겠다. 존재의 재발견!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불쑬불쑥 그 모습을 드러내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여! 그들을 경배한다. 그들은 내 영감의 원천이요, 별 것아닌 삶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신비한 힘이다. 내 앞에 분명히 존재했지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우둔한 나를 용서해 주기를. 부디 이런 내게 실망하지 말고 나 여기 있어요, 라고 계속 외쳐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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