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우산을 잃다

시월의숲 2008. 7. 2. 18:33

우산을 잃었다.

버스를 타고 졸다가 그냥 거기 두고 내려버린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무언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드는 찰나, 버스는 이미 뒷꽁무니만 보인채 유유히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안타까움이라니!

 

고작 우산 하나 잃어버린 것 뿐인데, 오늘은 하루종일 저 낮게 가라앉은 하늘처럼 우울했다. 요즘에 우산이야 직접 돈 주고 사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래저래 들어오는 것들이 많다지만, 또 특별히 애착을 가졌던 물건도 아니었건만, 나는 왜 그리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스스로의 부주의를 그렇듯 책망했을까. 단순히 비를 맞기가 싫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비를 맞는 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더욱 깊은 우울 속으로 걸어들어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토록 안타까움에 몸서리를 쳤던 것이리라.

 

그리고 무언가를 잃었을 때 오는 슬픔. 그게 우산이든, 손수건이든, 지갑이든, 혈육이든 간에. 잃어버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슬픈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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