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는 것일까

시월의숲 2008. 6. 28. 18:08

어제는 늦은 시간에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대뜸 한다는 소리가 술을 마시자는 거였다. 안동에 있는 친구였는데, 버스가 끊긴 시간이어서 나가기 곤란하다고 하니까 자신의 차로 나를 태우러 오겠다고 했다. 나는 차를 타고 오가는 시간도 생각해서 너무 늦게 만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결국은 그냥 만나기로 했다. 술을 마시고 싶어서였을까? 아님 그냥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날이 갈수록 커져가는 사람에 대한 실망감에 내가 많이 지쳐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혹자는 네가 무슨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사람에 대해 실망했다느니 하는 말을 하느냐고 냉소적으로 말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그리 대단한 사람은 못되나 적어도 내가 평소 가지고 있던 사람에 대한 환상이 무참히 깨져버리는 일을 목격한다는 것은 상당히 씁쓸한 일인 것이다. 그러려니 생각하기에는 내 생각과는 다른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사람이 되어야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단지 나이를 먹음에 따라 붙여지는 호칭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아이는 아이이고, 어른은 어른일 뿐이다. 요즘은 그러한 생각이 더욱 견고해진다. 아이의 심성을 지닌 어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런 어른들에 실망한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데서 오는 실망감, 그것을 환멸이라 하는 것인지.

 

아이스러운 어른이 진정 어른스러운 어른이 아닐까? 아이가 가진 천진성과 호기심, 꿈으로 가득찬 가슴. 거기다 나이를 먹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삶의 비의을 알아버린 자의 눈동자, 그 눈동자를 가진 어른. 아이다운 어른스러움으로 무장한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아,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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