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순수의 이면

시월의숲 2008. 10. 5. 11:16

어린 아이가 가진 그 천진무구성은 때로 나에게 악마성으로 비춰질 때가 있다. 아무 것도 겁낼 것 없고 모든 것이 자신의 안방처럼 편안하여 눈치볼 것이 없으며, 모든 것들이 호기심의 대상인 아이들의 순수성. 그것은 나로하여금 종종 공포스러울만치 잔인한 화를 치밀어 오르게 한다. 나는 분명 아이들의 그 저돌성과 풍부한 호기심을 두려워하고 있다. 하지만 왜? 순수함과 천진성의 이면에는 극도의 원시적인 폭력성이 내재해 있기 때문에?

 

이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자신만의 가치체계가 아직 성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나는 어서 철이 들라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이건 어쩌면 나만의 윤리의식을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감정적 문제일지도 모른다. 어리다는 것이 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반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에 나는 좀더 편안함을 느낀다. 그들은 비교적 남을 배려할 줄 알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적어도 그런 제스처를 취할 줄) 안다. 그것이 비록 거짓과 아첨과 시기와 비난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그러한 허위에 보다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어찌보면 좀 슬픈 일이긴 하다.

 

어쩌면 나는 너무도 거침없는 그들을, 그들의 세계를 부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치판단이 내려지기 전의 그 무구한 세계가 너무나도 찬란해 보이는 것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달리 내가 가진 그 화를 설명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아이들의 그 '세계'는 사회통념에 비추어 너무나도 위험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자칫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가치체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이다. 웃으면서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처럼.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악마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그 순수와 천진무구의 악마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그 세계가 내게 온전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 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양면성이 있다. 그것을 다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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