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시월의숲 2008. 10. 2. 21:41

며칠 전 인터넷을 개통하기 위해 기사를 불렀다. 전화로 어디어디 앞으로 나와 있으라고 말한 후 20분 쯤 지나자 기사가 도착했다. 그는 마른 체형에 어울리는 날렵함과 숙련됨을 가지고 두꺼운 전기선과 연장통, 사다리를 차에서 꺼내들고 내 자취방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러고는 선이 연결될 수 있는 견적을 재어보더니 조금의 지체도 없이 작업을 시작했다. 집 앞에 있는 전신주에 올라가 들고 온 인터넷 선을 연결하고 그 선을 다시 주인집 지붕 끝 물받이 위로 올린 다음 내 방 창문으로 집어 넣어 컴퓨터와 연결했다.

 

너무나 쉬웠다. 그의 작업이 쉬워 보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고작 십 여분 정도만 기다리면 인터넷이 내 방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생각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도 이제 세계와 연결되는 접점을 가지게 되었다! 기사가 인터넷 선을 들고와 전신주와 연결하려 할 때 문득 바라본 하늘은 가늘고 긴 선들의 향연이었다. 검은 거미줄처럼 그 선들은 집과 집을 연결하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가르며 결국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무엇을 잡기 위해 그리고 많은 거미줄을? 나도 하나의 거미줄을 쳐놓고 하늘을 바라본다. 한 가닥의 선으로 나는 세계와 연결되었지만, 정작 내가 바라봐야 할 하늘은 자꾸만 사라지는 것이 아닐지, 멀어지는 것이 아닐지, 왠지모를 안타까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보이지 않는 무수한 전파와 소음과 매연과 저 선들 때문에. 나도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선은 무언가를 이어주기도 하지만 또 무언가를 갈라 놓기도 한다. 하늘 위에 떠 있는 선들은 우리를 이어주는 선일까 아님 갈라놓는 선일까? 그것이 어떠한 線이든 善하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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