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

시월의숲 2008. 10. 9. 21:27

발령 동기들을 만날 때면 나는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그들은 그들만의 고민과 직장 생활의 어려움 등을 토로하지만 나는 그들의 대화에 끼지 못하고 항상 겉돌기만 한다. 몇 마디의 응대와 짧은 발언이 전부인 지극히 단순한 대화. 아직 그들과 더욱 친해지지 않아서일까. 나는 가끔가다 만나는 그들과의 식사자리나 술자리가 마냥 어색하기만 하다. 울진에 온지 석 달째가 되어가지만 아직도 그들은 내게 낯선 타인들일 뿐이다. 왜 나는 그들과 같은 세계에서 일을 하면서도 그들과 친해지지 못하는가. 가끔씩 만나기 때문에? 분명 그것도 한 몫하는 것은 사실이다. 자주 만나야 친해질 것이 아닌가. 더욱이 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얼마나 힘들어 하는가.

 

그들이 하는 대화에 내가 지루함을 느끼는 것은 그 나이 또래가 만나면 으레 할만한 대화의 주제, 그러니까 결혼 문제랄지, 애인 문제 같은 것들에서 내가 끼어들어갈 자리가 없다는데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으며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성이 좋은 사람들은 자신과 맞지 않는 대화의 주제라도 잘 받아주고 적절히 위트있는 답변을 해줄 수 있으며 때로 상대방과 다른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분명 원만한 인간관계의 기술은 제로에 가깝다. 편안히 대화를 이끌어갈 줄 알고 무엇보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사람들을 대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런 내가 너무나도 싫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어찌할 것인가.

 

오늘도 그들과의 저녁 식사시간 내내 어딘가 불편하고, 알 수 없이 불안했으며, 시시 때때로 긴장했다. 도대체가 생기다 만 것 같다. 인간들과의 친해짐. 특히 나보다 어리거나 나와 나이가 같은 사람들과의 친해짐, 아니 처음 만난 사람과의 어색한 긴장감을 견딜 수가 없다. 내가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것은 바로 그때이다. 그래서 때로 내가 이중적인 성격같다는 말을 듣는다. 처음 만나거나 별로 친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는 말도 없이 착한 척 가만히 있다가, 오래 만나서 조금 친해졌다 싶은 사람 앞에서는 말이 많아지고 반박도 잘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표면적으로 보이는 내 모습일지는 모르나 그들은 분명 나를 오해하고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일부러 조용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색하고 낯선 긴장을 극복하기가 참으로 힘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못나게.

 

자학은 하지 말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노력해 봤지만, 지금도 노력하려고 하지만 정작 그들 앞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어진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들을 자주 만나서 이야기해봐야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가능하다고 해도 그러고 싶지가 않다. 사람을 사귀기 위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또 그렇기 때문에 혼자인 것이 편할 때가 많다. 혼자 있을 때는 긴장하고 있을 필요가 없으니까. 나는 그런 인간이다.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

'어느푸른저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도기행  (0) 2008.10.18
산책  (0) 2008.10.12
순수의 이면  (0) 2008.10.05
  (0) 2008.10.02
여름 지나 가을,  (0) 2008.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