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배수아,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 이룸, 2000.

시월의숲 2008. 11. 4. 21:00

2000년도에 나온 책이니까 벌써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읽어보고 싶었어도 읽지 못하다가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다. 한창 몸에 대한 담론이 우후죽순 번질 때 나온 책이라서 유행이랄지 유통기한이 지난 것을 대할 때의 느낌이 들었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것이 쓸데없는 생각이었음을 알았다. 이 책은, 나온 지는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급격한 변화가 생겨났다 사라지는 시대이지만 성과 몸에 대한 고지식한 사고방식은 아직도 여전히 부패하지 않은채로 남아있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더욱 여실히 들었다.

 

작가의 자유주의적이라면 자유주의적인 몸에 대한 여러 담론들이 지금과 같은 사회(표면적으로는 상당히 개방적인 척하는)에서도 여전히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거부감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좀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은 몸에 대해 도덕적인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쿨하게, 우리가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관습과 도덕과 규율에 의해 사로잡혀 있던 몸에 대한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보다 자유롭게 몸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몸을 가장 사랑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진부할대로 진부한 그 말을 상당히 신선하게 들려준다. 배수아만의 스타일로. 그리고 책의 말미에 가서야 들려주는 육체의 유한함. 그 유한함으로 우리는 누군가를 그리도 그리워하고, 같이 살을 부대끼고 싶어하며, 그 상대를 잃었을 때는 죽음같은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감각이 없는 삶에 대해 말한다. 거추장스러운 육체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워지는 상태. 우리의 육체는 언젠가 사그러진다는 사실을 항상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감각이 요구하는 것에 조금은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책의 제일 마지막에 나온 문장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마쳐야겠다. 내게 적잖은 위안을 준 그 말.

 

"아주 오래 전에, 누군가가 말했었다. 육체가 없으면 고통도 없다. 그러니 아가야, 그날 이후를 겁낼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