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미시마 유키오, 『가면의 고백』, 동방미디어, 1996.

시월의숲 2009. 8. 23. 22:10

 

 

미시마 유키오의 <가면의 고백>을 읽으면 자연스레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 생각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두 작품 모두 자전적인 색채가 강하며 고백적인 문체로 서술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두 작품을 공통적으로 묶는 강력한 힘은 바로 작품 전편에 흘러 넘치는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절절한 고백이다. 이는 작품을 벗어나 미시마 유키오와 다자이 오사무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결정적인 인상으로도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둘은 그렇게 닮았다. 자신의 나약함을 누구보다 깊이, 절망적으로 느끼고 있었으며, 그리하여 그러한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자 하였고, 삶보다는 죽음을 갈망했으며 끝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버린, 그런 인간.

 

하지만 그들이 가면을 쓰고자 한 방식은 사뭇 달랐다. 다자이 오사무는 나약함을 감추려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미시마 유키오는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강함을 전면에 내세웠다. 전형적인 지식인의 모습(늘 고뇌에 찬듯 하고, 심약하며, 몹시 야윈)을 혐오하여, 자신은 검도, 보디빌딩 등을 하며 강인한 체력과 건장한 체격을 유지하려 하였다. 하지만 그가 추구했던 강함의 이면에는 남들과는 다른 그의 성 정체성의 문제가 있었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조각상이나 회화(아름다운 얼굴과 단단한 근육을 지닌 남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그것에서 관능적인 매력을 느꼈다. 그리하여 그것을 닮고자 하였으며 결국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다. 미시마와 다자이, 둘 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 천착하였으나, 미시마는 자신의 성 정체성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불안에 그 뿌리를, 다자이는 선천적인 병약함과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가족에 대한 혐오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그리하여 그들의 가면은 어찌 되었는가? 성공적인 연극이 되었던가? 다자이 오사무는 논외로 하더라도, 미시마 유키오의 경우는 어쩌면 성공적이었다고 말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면의 고백>을 쓰고 난 후의 그의 삶을 돌이켜본다면. 그 소설에서 미시마는 자신의 성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고, 알 수 없는 불안에 가슴을 졸이며, 미래를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그리하여 자연스레 피를 흘리며 잔인하게 죽어가는 가학과 피학의 상상만이 잠시나마 그에게 악마적인 평온함을 주었던 한 청년의 초상을 그려보인다. 그 때문에 가면을 쓰고 '정상인'을 연기할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 그가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기 위해 쓴 가면이 점차 실제의 살갗을 파고들어 종래에는 자신이 한 행동이나 말이 가면이 하는 것인지 본래의 내가 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상황. 어느 것이 진정한 나인가? 미시마에게는 그 물음이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근육질의 거친 사내에게 관능을 느끼던 그가 실제로는 여인과 결혼을 하였으며, 아이를 두었으니 말이다. 내가 보기에 그의 가면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자신을 수렁에 빠뜨리는 불안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증거라고도 생각되지만, 그는 기꺼이 그 가면을 쓰고자 했으며, 결국 할복자살을 함으로써 불완전했던 가면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다자이 오사무와 미시마 유키오. 둘 중 누가 더 나약한가라는 물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게 있어 그 둘은 서로 다른 나약함의 표상일 뿐이다. 아마 이 말을 미시마가 들었다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 일본도를 들고 나에게 돌진해 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악마적이고 불온한 것으로 생각하고 '정상'을 갈망했으나 결국 평생 가면을 쓰고 살아야 했던 인간을 어찌 강하다 할 수 있을까.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쓸쓸함, 영혼을 파고드는 공허감을 죽을 때까지 그림자처럼 달고 살아야 하는 자의 삶의 무게란! 하지만 그러한 소설을 통해 자신의 나약함과 혼란스러움을 만천하에 드러낸 그 용기는 결코 나약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그것조차 나약한 사람들만이 지닌 나약한 저항방식이라고 비아냥거릴지라도. 하지만 죽음으로써 무언가를 증명하려하거나, 보여주려 하는 사람들은 과연 강한 것인가, 약한 것인가? 아, 또다시 모든 것이 미궁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