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히라노 게이치로, 『일식』, 문학동네, 2009.

시월의숲 2009. 9. 1. 21:27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은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기 직전의,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기존의 패러다임이 점차 변화해가기 시작하는 시기의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토마스 주의에서 점차 플라톤 사상을 도입하려는 사상적 변화의 시기, 기독교와는 사뭇 다른 세계관을 지닌 이단의 출몰과 그러한 이단을 잠재우기 위해 마녀사냥이 일어났던 혼란의 시기가 소설의 배경이다. 토마스주의자인 수도자가 이단의 책을 구하기 위해 어떤 마을로 찾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일이 이 소설의 큰 줄거리다. 그는 철학과 신앙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단이라 불리는 책들도 모두 섭렵하여 무엇이 기존의 신앙과 일치하는지, 일치하지 않는지를 밝혀내려 하였다. 자신이 가진 사상의 체계에 비추어 모든 이단의 다양한 이론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믿었다. 그런 그가 책을 찾으러 들어간 마을에서 본 것은 이단적인 것의 거대한 환영이었고, 그 환영과 자신과의 합일이었다 

 

사실 이런 대략적인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것도 힘이 든다. 소설의 배경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나에게 작가가 풀어놓은 해박한 중세철학과 신학에 관한 이야기는 그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내가 이 소설을 중간에 놓지 못한 이유는, 작가가 풀어내고 있는 중세 유럽의 시대상황이 묘하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시기가 무언가 변혁이 일어나려고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없는 세기말적인 두려움과 놀라움이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신과 인간, 정통과 이단, 마녀사냥, 금욕과 방종, 성스러움과 타락, 연금술과 같은 단어들이 생생하게 빛을 발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리라. 그것과 더불어 주인공인 수도사가 겪게 되는 시골마을에서의 이단체험(?)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독실한 기독교 수도사가 이단의 금서와 연금술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유로 나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에 호기심을 느낀 것이리라.

 

작가가 이 소설에서 무엇을 말하려 했든 간에, 나는 이 소설을, 범박하게 말해서, 금지된 것들에의 매혹으로 읽었다. 결국 이것을 말하기 위해 작가는 중세를 끌어들였으며, 현학적인 철학과 신학사상을 끌어들인 것이다. 수도사를 이끈 것은 무엇이었나? 그 자신은 결코 이단의 금서에 혹한 것이 아니고, 연금술을 배워 자신의 안위를 도모코자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그 모든 것을 토마스주의 사상으로 해석하기 위한, 그저 깊은 신앙심에서 나온 학문적인 연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변할지라도) 결국 그를 이끈 것은 금지된 것, 불온한 것, 이단적인 것의 매력이었음은 아마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거대하고 견고한 사상의 벽이라도 그보다 더욱 거대한 시간 앞에는 그 빛을 잃고 만다. 그러한 변혁의 시간 속에 새로운 인물과 사상이 등장하여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바로 금지된 것에의 매혹이다. 금지된 것들을 감싸고 있던 봉인은 언젠가 풀리고 만다. 매력을 상실한 금기는 더이상 금기가 아니게 되며, 또다른 금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이전보다 더욱 생생한 매력을 풍기며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난해한 내용이 더러 있었지만, 중간에 덮어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중간중간 맞춤법이 틀린 단어들이 돌처럼 박혀 있어서, 읽는 흐름이 끊길 정도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어려운 한자어 때문에 혹은 작가가 구사한다는 고어체를 번역하는데서 오는 당연한 결과인줄 알았다. 마치 시적 허용처럼 말이다. 그런데 책 뒤에 실린 작가인터뷰와 옮긴이의 말까지 읽고 난 결과, 그게 아니란 것을 알았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없이 많은 오타가 넘쳐났던 것이다! 그것을 일일이 지적하는 것은 시간낭비인 것 같아 그만둔다. 하지만 1999년에 나와서 2009년에 2판 1쇄를 찍을 때까지도 그것이 수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혹, 내가 잘못 안 것은 아닐까? 하지만 책 어느 곳에도 원문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라든가, 혹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틀리게 적었다는 말을 읽은 기억이 없는데!

 

그것을 제외한다면 비교적 재밌게 읽을수 있는 소설이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아니 가볼수 없는 시대를 소설로 형상화한 모든 작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단지 책을 통한 지식과 상상력만으로 우리는 그 시절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소설이 지닌 매력,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