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민음사, 2007.

시월의숲 2012. 5. 29. 23:56

 

 

 

함정임은 『나를 미치게 하는 것들』이라는 책에서 '감탄하는 것도 능력이다'라고 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 말을 무슨 주문처럼 되뇌이며 점차 감탄하는 일 없이 매사 무감해지는 나를 질책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온통 느낌표의 향연인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은 격정적이고 확신에 차며 선동적이기까지 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선뜻 마음이 끌리지 않았고, 쉽게 읽히지 않았다. 심오하고 철학적이며 어려운 말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가 찬탄해 마지않는 모든 자연, 바람, 나무, 잎사귀, 바위, 강물 등의 묘사나 신과 자연, 인간 등에 관한 그만의 확고부동한 깨달음이 내 마음에 그리 와 닿지 않아서다. 그것은 마치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공간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모든 사물에 관한 새로운 깨달음, 환희, 쾌락 등을 말하고 있는데 나는 그것이 마치 비현실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고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어떻게 그는 바람과 강물, 막 터져나오는 잎사귀 하나에도 저렇듯 찬탄의 언어를 끊임없이 쏟아낼 수 있는가? 그게 가능한 일인가?

 

앞서도 말했지만 그것은 분명 능력이다. 앙드레 지드는 감탄하는 능력을 타고 난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만의 감탄이라면 좀 곤란하지 않은가?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기 힘들어 했던 것도 그러한 곤란함이 다소 작용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육체와 정신의 해방을 노래하고, 순간과 욕망에 충실하라고 부르짖지만 그러한 부르짖음이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감정의 흐름을 만들어주는 서술이 뒷바침되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너무 지루해져버린 느낌이다. 책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연에의 묘사와 예찬이 그 과도함과 주관성으로 인해 처음의 청량함과 신선함을 잃어버리고 나중에는 버거워지고 마는 것이다(이건 분명 내 오독일 수 있다). 누군가는 좋은 글의 조건으로 느낌표를 최대한 빼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그건 아마도 여물지 못한 감정의 남발을 경계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건 물론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조언의 말로서 앙드레 지드 같은 대문호에게 감히(?) 해당되는 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의 감탄의 능력과 그로부터 비롯된 깨달음의 말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충분히 생생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모든 정신적인 굴레를 벗어나라는 메시지는 만고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이다(카르페 디엠!). 또한 군데군데 밑줄을 긋게 만드는 잠언의 언어들은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은, 이 말 하나로서 다른 어떤 책보다도 매력적인 책이 된다.

 

'다 읽은 뒤에는 이 책을 던져 버려라. 그리고 나를 떠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