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제프 다이어,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웅진지식하우스, 2014.

시월의숲 2015. 3. 22. 17:50

캄피돌리오 언덕으로 갔다. 거기 카피톨리움의 폐허 위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고대에 관한 책을 쓰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에 분명하게 깨닫지는 못했지만, 그런 책을 즐겁게 쓸 수 있을 거라는 한때의 희망도 언젠가는 나 자신의 폐허 안에 그대로 잠들겠구나 하는 예감이었다. 몇 년째 흘러 다녔던 나는 이제 빌라 아드리아나에서 보았던 외로운 구름처럼 멈춰버렸다. 당시에는 그 점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가 어떤 전환점이었을 수도 있지만, 당시 나는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보이는 반응, 즉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마음 속으로 어느 지점에서는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지적인 훈련과 야망들이, 심드렁했던 약물남용과 나태함, 그리고 실망감 때문에 모두 흩어지고 말았다는 것, 나에게는 목적도 방향도 없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삼십 대 때보다 훨신 적게 생각한다는 것, 나 스스로 빠른 속도로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해 아무렇지 않아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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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몇 십 년, 아니 몇 세기가 마치 저속촬영을 한 영상처럼 빠르게 눈앞에서 지나가는 것 같았다. 잠시 돌들이 그동안 받아들인 햇빛을 내뿜으며 은은하게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하늘은 금세 다시 어두워지고, 돌들도 빛을 잃고 밋밋해졌다. 나는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실망했다. 우울함이 엄습하며 지난 십오 년 동안, 세상의 한구석에서 다른 구석으로 옮겨 다니며 그렇게 어긋날 기대만 하며 보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여행이 주는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의 기복을 느낄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밀려드는 감정의 물결, 바닥을 치는 낙담, 한없이 이어지는 지루함과 불편함의 연속도 이제 없을 것 같았다.(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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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하늘이 자연세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것이라고 루퍼트 브룩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찰스톤 같은 잉글랜드의 몇몇 주에서만 유효하다는 점에서 보편적이지는 않다. 고대의 기둥들이 선 렙티스에서는 하늘이 가장 밝았다. 배경인 하늘과 기둥을 구분해주는 선만큼 날카로운 건 없어 보였다. 거기에 대해 아주 간단하고도 비이성적인 설명을 하자면, 시간이 지나면서 하늘과 기둥을 구분해주는 경계선이 닳아버린 거라고, 아주 가늘어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날카로워진 거라고 할 수 있다. 하늘은 최대한 가깝게 다가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구분은 되었다. 그렇게 인간이 만들었지만 시간을 초월해버린 것과, 그 자체로 영원한 것 사이의 절대적인 구분은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유적지에 가면 가장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고대 유적을 보는 하나의 시각이다. 또 다른(같은 대상을 보는 다른 관점) 시각에서 보자면, 유적은 먼 과거가 현재에 거의 닿을 듯 가깝게 있는 것이기도 하다.(7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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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배를 타고 어딘가를 떠나는 일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물결의 움직임, 엔진이 내는 소리, 삶을 뒤에 남기고 떠나지만, 당신은 여전히 뒤에 남기고 떠나는 그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당신의 일부는 그곳에 남는다. 죽음도, 최고의 죽음이라면 아마 그것과 비슷할 것이다. 모든 것은 기억이지만, 또 모든 것은 확장된 현재 안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1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