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만한지나침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난다, 2013.

시월의숲 2015. 8. 25. 22:48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나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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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역사를 앞에 내세울 때는 그 역사의 승리를 되새기고, 그 좌절에서 승리의 약속을 발견하자는 것이다. 하나의 승리 앞에서, 또는 승리의 약속 앞에서 우리는 그 승리가 공정한 것인가를 묻게 된다. 말하자면 주어진 현실의 조건들을 제대로 지켰는지 묻는 것이다. 현실을 현실 아닌 것으로 바꾸고, 역사의 사실을 사실 아닌 것으로 눈가림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상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비겁하기 때문이다.(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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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사람들은 자연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자연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도 없다. 도시민들은 늘 '자연산'을 구하지만 벌레 먹은 소채에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자연에는 삶과 함께 죽음이 깃들어 있다. 도시민들은 그 죽음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처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막아내려 한다. 그러나 죽음을 끌어안지 않는 삶은 없기에, 죽음을 막다보면 결과적으로 삶까지도 막아버린다. 죽음을 견디지 못하는 곳에는 죽음만 남는다.(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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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삶은 다른 삶을 준비하기 위한 삶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한 삶이기도 하며,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삶이 거기 있기도 하다.… 성장통과 실패담은 다르다. 두 번 다시 저지르지 말아야 할 일이 있고, 늘 다시 시작해야 할 일이 있다. 어떤 아름답고 거룩한 일에 제힘을 다 바쳐 실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 일에 뛰어드는 것을 만류하지 않는다. 그 실패담이 제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하였다는 승리의 서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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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실패와 변화도 이 사소한 것들과 세상의 거창한 이론들이 맺게 되는 관계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늘 실패한다. 우리가 배웠던 것, 세상의 큰 목소리들이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것들과 우리의 사소한 경험이 잘 맞아떨어지지 않고 엇나갈 때 우리는 실패한다. 우리들 개인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가 저 큰 목소리들 앞에서는 항상 '당신의 사정'이다.……그런데 우리는 그 실패의 순간마다 변화한다. 사람들마다 하나씩 안고 있는 이 사소한 당신의 사정들이 실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사정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 바로 그 변화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있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것 같은 큰 목소리에서 우리는 소외되어 있지만, 외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당신의 사정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글쓰기가 독창성과 사실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사소한' 사정을 말한다는 것이다.(175~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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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종류의 대중물과 상업물에는 '시'가 충분하게 들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시를 소비할 뿐 생산하지는 않는다. 시인이 제 몸을 상해가며 시를 쓴다는 것은 인간의 감정을 새로운 깊이에서 통찰한다는 것이며, 사물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개척한다는 것이며,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과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저 대중 소비적 '시'의 소구력과 성공에 비한다면, 새로운 감수성과 이미지의 생산이 목표인 본격적인 시의 수요는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미미하다, 그러나 시가 생산한 것은 어떤 방법과 경로를 거쳐서든 대중물들 속에 흡수되고 전파된다. 시는 낡았고 댄스 뮤직은 새롭다고 믿는가. 사실을 말한다면 시에서는 한참 낡은 것이 댄스 뮤직의 첨단을 이룬다.(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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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특별히 유행에 민감한 나라라는 것은 모든 것이 가장 빨리 낡아버리는 나라가 바로 이 나라라는 뜻도 된다. 어제 빛났던 물건이 오늘 낡은 버전이 되어버리며, 내일 내리게 될 구매 결정이 모레는 벌써 성급한 판단이었던 것으로 증명된다. 결혼을 하면서 그렇게 요란을 떨며 장만했던 가구와 전자 제품들은 손때가 묻기도 전에 돈을 들여 처리해야 할 쓰레기 더미로 전락하고, 10년을 살았던 아파트도 거기 쌓인 추억이 없다. 심지어는 주소를 기억하기조차 어렵다. 마음속에 쌓인 기억이 없고 사물들 속에도 쌓아둔 시간이 없으니, 우리는 날마다 세상을 처음 사는 사람들처럼 살아간다. 오직 앞이 있을 뿐 뒤가 없다. 인간은 재물만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저축한다. 그날의 기억밖에 없는 삶은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삶보다 더 슬프다.(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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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자각되지 않은 말들이고 진실과 부합되지 않는 말들이고 인습적인 말들이지, 반드시 어려운 말이 아니다. 어려운 말은 쉬워질 수 있지만, 인습적인 말은 더 인습적이 될 뿐이다. 진실은 어렵게 표현될 수도 있고 쉽게 표현될 수도 있다. 진실하지 않은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억압받는 사람들의 진실이야말로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것에 속한다. 장 주네는 "자신이 배반자라고 여겨질 때 마지막 남아 있는 수단은 글을 쓰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의미하는 바도 아마 이와 관련될 것이다.(2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