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안개 속에서

시월의숲 2018. 11. 27. 00:13

어떻게 그 안개를 뚫고 집에 왔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잠시(아니 오래도록) 끝이 보이지 않는 안개에 갇혀 있었다. 평소보다 서너 배는 더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것도 같았다. 이렇듯 짙은 안개를 나는 오래 전에 만난 적이 있다. 허공에 손을 뻗어도 손이 보이지 않았던 그때의 기억. 마치 안개에게 먹힌 듯, 안개의 내장 속을 걸어가는 듯 느껴졌던 기억.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자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아 두려웠다. 이대로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안개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그 길이, 마치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인 것만 같아서 순간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삶은 단 한 번이고 두 번다시 반복되지 않겠지만, 고통은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통이 곧 삶인 것인가. 이 유한한 생에서 고통만이 이토록 생생하게 반복되어 살아 있음을 상기시킨단 말인가. 그것은 축복일까, 형벌일까. 어쩌면 내 머릿속도 이미 안개로 점령당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