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 『대심문관의 비망록』, 봄날의책, 2016.

시월의숲 2018. 12. 6. 23:38




이 소설을 얼마만에 다 읽었는지 모르겠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간 것도 같고, 무척 짧은 시간이 지나간 것도 같다. 이 소설이 2016년도에 출간되었으니, 최소한 나는 2016년부터 이 소설을 가지고 있었던 셈인데(구입 후 바로 읽지는 않았으므로), 어쨌거나 2016년이 도대체 언제 지나갔는지 그리고 지금은 또 왜 2018년이나 되었는지, 이제 곧 있으면 2019년이 되는 것인지, 그 시간의 흐름에 아찔한 기분이 든다. 그 시간 동안 이 소설은 내 책장에 꽂혀 있었고, 어느 시점부터 읽기 시작하여 하루에 한 페이지 혹은 이틀에 몇 페이지씩 읽다가 이제서야 다 읽었으니, 지금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완독했다는 성취감이나 후련함보다는 내가 과연 이 책을 읽은 것이 맞는지 의아함이 앞선다. 이건 결국 그동안 책을 끈기있게 읽지 못했다는 사실을 구구절절 말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어쨌거나 무척이나 오랜만에 책 한 권을 다 읽었고, 한 권의 책을 무척 오래도록 읽었다. 그건 이 소설이 읽기 까다로웠다는 점도 있을텐데, 어쩌면 나는 이 소설에 적응하느라 그리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도 생소한 이름의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라는 포르투갈 태생의 작가가 쓴, 제목도 너무나도 낯설어서 이상하기까지 한 <대심문관의 비망록>은, 첫 페이지를 읽을 때부터 느껴지는 특유의 생소함과 독특한 서술방식으로 독서라는 행위를 자체를 무척 불편하고 힘들게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의 그 생경함을 넘어서 차분하게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점차 느껴지는 특유의 리듬감과 유머, 기괴함과 디테일한 묘사에 어느새 적응하게 되고, 급기야는 매료된다. 그렇다, 매료되는 것이다!


신기한 일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긴 독백에 살짝 지칠 때도 있었지만, 그게 이 소설의 매력이기도 하다는 걸 결국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다. 책 뒷편에 실린 옮긴이의 말에도 나오지만, 평론가들이 지적한 "그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음표를 활용하여 시적 산문이라는 다성의 멜로디를 작곡한다" 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평론가들이 모두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을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그것은 듣는 것이듯, 이 소설에 대해서도 수많은 말을 덧붙일 수 있겠지만 결국 직접 읽는 것이 이 소설을 설명하는 가장 적확하고도 당연한 일임을 알게 된다. 적어도 이 소설만큼은 다른 어떤 설명보다도 직접 읽어보아야 한다는 것을, 이미 읽어본 사람은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이 책을 번역한 배수아의 후기는 미리 읽어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늘 그렇듯 그의 후기는 본래의 책보다도 더욱 매력적이니까.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의 작품들은 거의 예외없이 포르투갈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고 있다. 물론 그의 소설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나라 포르투갈은 기괴하고, 비틀렸으며, 음울하고, 전근대적이고, 슬프고, 풍자 속에 갇혔으며, 파국과 재앙을 향해 치닫는 꿈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그가 그리는 포르투갈은 불행의 모든 초현실적 얼굴이다.

  오직 문학의 시선을 통해서 한 나라를 알게 되는 일은 신비하다. 성숙한 독자들은 그것이 사실과 얼마나 부합하는가, 얼마나 객관적인가 하는 문제에는 관심 두지 않는 법을 안다. 문학은 저널리즘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실제로 방문하여 내 눈으로 직접 본 오스트리아의 빈보다 페터 한트케, 엘프리데 옐리네크, 토마스 베른하르트를 통해서 알게 된 낯선 도시 빈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그 세사람의 작가가 빈을 묘사하고 재현하고, 각자의 '문학'이 일어나도록 허용한 방식이 다들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도 문학은 평행하는 실제일 것이다.

  우리는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가 포르투갈을 묘사하는 방식에 매혹된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한 디테일에 기대며 독자를 괴롭히듯이 기나긴 문장의 파편을 펼쳐놓는 그의 스타일이지만, 그 너머에서 우리를 응시하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인간 운명의 보편성이라는 바탕을 결코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 포르투갈에 매혹되어버리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리스본에 사로잡혀버리게 될지도 모른다.(553~5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