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안드레 애치먼, 『그해, 여름 손님』, 잔, 2018.

시월의숲 2019. 4. 8. 23:35


안드레 애치먼의 <그해, 여름 손님>을 읽었다.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의 원작 소설인데 읽고 있자니 어쩔 수 없이 영화 속 장면들이 생각났다. 어떤 장면들은 너무나도 영화와 비슷해서(당연하게도!) 마치 다시 영화를 보고 있는 듯 느껴지기도 했고, 오히려 책 속의 묘사 덕분에 영화 속 장면들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주인공의 심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었을 때와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나중에 보았을 때의 느낌이 분명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엔, 영화 때문에 소설을 읽게 되었으니 당연히 영화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을 것이다. 영화가 아니었다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탈리아의 찬란한 여름 햇살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소설을 읽지 않았거나(소설의 존재를 몰랐거나), 소설만으로는 영화에서 받았던 격렬한 감정의 흔들림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 


소설은 영화와는 달리 엘리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과거의 어느 한 시절, 올리버를 만났던 날들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는 그 시절을 과거의 일로써 추억하지만, 그것은 과거가 아니라 마치 현재에도 그런 것처럼,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게 있다고 말하고 있는듯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엘리오의 시점을 따라서 그의 눈으로, 그의 심장으로, 그의 언어로 '그'와 '그의 올리버'를 들여다 본다. 그것이 영화와 소설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영화가 본래 시각적인 매체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순전히 감독의 의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영화는 소설보다 객관적인 시점으로 진행된다.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면 소설 쪽이 나을 것이다. 물론 영화나 소설이나 올리버의 마음은 알아채기 그리 쉽지 않지만.


다른 점이 더 있다. 영화는 엘리오가 올리버의 결혼 소식을 듣는 시점에서 끝이 나지만, 소설은 그 이후에 시간이 얼마간 지난 시점까지 보여준다. 영화는 우리에게 엘리오의 첫사랑은 끝이 났다는 사실을 격렬히 알려주지만, 소설은 감정의 소용돌이가 가라앉고 보다 성숙해진 엘리오와 안온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올리버의 재회를 다시 한 번 더 보여준다. 물론 그 재회가 그들을 다시 시작하게 해주는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하지만, 어쨌거나 영화보다는 소설의 결말이 좀 더 열려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결말이 더 낫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영화를 보고 느꼈던 첫사랑의 환희와 상실감과 슬픔, 그 푸릇하고 꾸밈없는 날것의 감정이, 소설에서는 시간의 세례를 받아 보다 성숙해진 듯 보였으니까 말이다. 첫사랑을 이루지 못해도 우리는 살아가고, 대부분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므로.


안드레 애치먼이 이 소설의 속편을 집필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는 '내가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고 긴 세월을 걸쳐 그들을 지켜보고 싶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그 말에 무척 흥분했으나, 영화에서 올리버 역을 맡았던 아미 해머가 속편의 영화화에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는 말에 조금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미 해머의 입장도 충분히 수긍이 간다. 영화 <Call me by your name>은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편이 나온다면 기꺼이 나는 읽을 것이고, 속편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또 기꺼이 그것을 볼 것이다. 나또한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고 긴 세월을 걸쳐 그들을 지켜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추억속에 가둬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이상한 글이 되고 말았지만, 어쩌면 이 글은, <그해, 여름 손님>에 대한 독후감이라기보다는, <Call me by your name>에 대한 못다한 영화감상문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