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해빠진독서

후쿠자와 유키치, 『학문을 권함』, 기파랑, 2011.

시월의숲 2021. 4. 3. 18:17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요즘 시대에 이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일본의 개화사상가이자 교육자였던 그가 학생들에게 들려줄 의도로 쓰인 이 책에 대해서 말이다. 요즘같이 인터넷이 발달하고, 모든 정보들이 넘쳐나고, 쉽게 퍼져나가는 시대를 살고 있는 21세기의 우리들에게 19세기의, 서양 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던 시대의 동양의 한 지식인으로부터 어떤 삶의 의미를 얻을 수 있을까? 삶의 의미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책이 어떤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가 혹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나 자신도 좀 의아했다.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에 나는 어떤 책에 대해서 쓸 때, 그 책이 어떤 의미 혹은 의의를 가지는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고 쓰지는 않는다. 나는 그저 그 책이 내게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거나, 혹은 책에서 느꼈던 몇 가지 감정들에 대해서 쓸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이 책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에 대해서 계속 생각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는 내가 이 책으로부터 큰 감흥을 받지는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뭐랄까, 좀 과격하게 말해서, 이 책은 학창 시절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 같았달까? 그 말씀은 하나같이 다 옳고 바르며, 소위 말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지만, 그것에 우리가 감동하기는 참 힘들지 않은가. 훈화 말씀을 듣다가 힘들어 쓰러지는 학생은 있을지언정, 그 말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물론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보다는 훨씬 깊고, 설득력이 있으며 보다 생생하고 열정적이지만 말이다. 이 책이 쓰인 시대 상황과 배경, 저자의 경력 등에 대해 생각하고 읽는다면 보다 재미난 독서가 될지도 모른다. 어떤 책들은 내용 자체보다도 그 내용을 둘러싼 것들을 통해서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실용적인 학문을 해서 개인의 독립을 이루고 나아가 일본의 독립에 기여해야 한다는 요지의 내용에 의의를 찾기보다는, 이 책을 쓴 작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상상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가 자신이 처한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 속에서 집안의 권유로 일찍부터 네덜란드어와 영어를 독학하며 문화를 익히고,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이미 외교사절단으로 나가 서양 열강들의 문물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꼈을 그 충격과 환희와 좌절을. 그가 서양 문물을 보고 느꼈을 감정을 지금 내가 가늠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감히 상상하건대, 그것은 정말 천지가 개벽하는 수준이 아니었을까? 

 

그런 어마어마한 정신의 각성을 경험한 자에게 당시 모국, 일본의 수준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해 보였음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그는 계몽, 즉 무지몽매한 일본의 학생, 나아가 국민들을 깨우쳐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이루게끔 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은 한 나라의 지식인으로써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 마음이 이 책을 쓰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고리타분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이 책이 새삼 열정의 산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흥미로웠던 것이 있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후쿠자와 유키치는 누구인가?' 라는 글이다. 이는 옮긴이가 쓴 것이 아니라 아마도 출판사에서 기재한 것으로 보이는데(책의 맨 앞에 '이 책에 대하여'라는 서론은 옮긴이가 쓴 것으로 나와 있으나, 마지막에 실린 글은 그것을 쓴 사람이 나와 있지 않다), 나는 이 글에서 그와 한국과의 관계와 제국주의적 성향에 대한 논쟁적 내용이 무척 흥미로웠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한국의 개화 사상가들과도 교류하며 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의 '탈아론(서양 열강의 일원이 되기 위해 조선과 중국 등의 아시아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은 일본의 제국주의화와 아시아 침략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이 그것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그의 사상이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글을 읽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중간중간 그런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문장들을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가령, '하늘의 도, 사람의 도에 따라 국제적인 교류를 갖고, 바른 도리에 기초해 아프리카 등 후진국 사람들에게도 잘못이 있으면 사과를 하고, 대의를 위해서는 영국이나 미국의 군함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국가가 치욕을 당했을 때는 국민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목숨을 바쳐 국가의 위엄과 영광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것이야말로 한나라의 자유와 독립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이다.(25~26쪽)'라는 문장을 읽을 때면 '도'라고 하는 추상적인 사상에 따라 국제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단순성과, 후진국 사람들에게도 잘못이 있으면 사과를 해야 한다 문장에서 보이는 위선과(물론 이 글은 '탈아론'을 쓰기 훨씬 전에 쓴 것이지만), 때로 대의를 위해서는 영국이나 미국의 군함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그 '대의'가 결국 다른 힘없는 나라를 짓밟아도 된다는 논리로 귀결되는 모순과 자가당착이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는 심지어 이렇게도 말했다. '자기 나라를 부강케 하는데 좋은 일이라고 힘없고 가난한 나라에게 어려운 문제를 무리하게 강요해도 좋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이는 마치 씨름 선수가 완력으로 병자의 팔을 부러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다른 국가의 권리를 짓밟는 행위이며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46쪽)' 이 문장들과 후에 그가 주장하게 되는 '탈아론'과는 얼마만큼의 괴리가 있는가? 

 

제국주의적 논리의 싹이 보이는 문장들을 찾아서 비판하기 위해 <학문을 권함>이라는 책을 읽는 것은 어쩌면 악의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후에 그의 '탈아론'을 비판하기 위해 이 책에서 그가 말했던 내용을 위선적이라고 싸잡아 비난하는 것 또한 어쩌면 무리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비판은 이미 많이 나와 있을 것이고, 이 책에까지 그 논리로 바라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요, 이 책에 대한 온당한 평가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단순히 이 책 한 권만 놓고 본다면, 한 열렬한 개화사상가의 깨우침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이 책은 실제로 당시 일본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그가 말한 일신의 독립과 나라의 독립을 이룰 수 있게 한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고 하니, 결코 만만하게 볼일은 아닌 것이다. 물론 그 후의 그의 행적에 대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씁쓸한 마음이 들지만. 

 

그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도 썼다. 

 

'인생에 있어 살아 용솟음치는 활력은 사물에 직접 부딪쳐 보지 않으면 생겨나지 않는다. 자유로이 말하고, 자유로이 행동하며, 부자가 되건 가난하게 되건 그것은 본인이 선택한 결과인 것이다. 어떠한 인생을 살든 그것은 자신의 사는 방법에 달려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남에게 그 자유를 빼앗길 이유는 없다.(180쪽)'

 

또 이런 문장도.

 

'믿음'의 세계에 허위가 많고, '의심'의 세계에 진리가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193쪽)

 

이는 혼란스러웠던 시대 속에서 그가 아니었다면 결코 할 수 없었을 말이 아니었을까?

 

 

 

<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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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인 <학문을 권함>은 역자에 따라서 다양한 제목으로 나와 있는데, 예를 들어, <학문의 권유>, <학문의 권장> 등이 있다. 이 세 가지 제목은 미묘하게 다른 느낌을 전해주는데, '학문의 권유'는 다른 두 제목에 비해 약간 생소한 느낌이 있고, '학문의 권장'은 보다 무겁고 살짝 강압적이 느낌이 있는데 반해 '학문을 권함'은 보다 부드럽고 다독이는 느낌이 있다. 나는 이 세 가지 제목 중에 '학문을 권함'이 제일 마음에 든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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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리뷰를 거의 쓰고 나서, 인터넷으로 후쿠자와 유키치를 검색해봤는데, 다양한 리뷰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2010년에 프레시안에 실린 김동기 철학아카데미 상임연구원의 글이 눈에 띄었다. 제목은 <'탈아론' 후쿠자와 유키치, 침략의 원흉만은 아니다!>인데, 이 글 역시 <학문을 권함>에 대한 글이었다. 그 글은 근대성에 대해서 논하면서, 일본은 독립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파악하여 그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화를 이룬데 반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그렇지 못하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찾아보면 다양한 내용이 더 나오겠지만, 이 기사만 읽어도 이 책에 대한 내 지식과 관점이 얼마나 협소한가를 알 수 있었다. 처음 읽었을 때, '교장선생님의 따분한 훈화' 정도로 생각한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지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