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푸른저녁

너의 세계는 고작 너라는 인간의 경험일 뿐

시월의숲 2022. 1. 28. 20:52

세계라는 건 말이야, 결국 개인의 경험치야. 평생을 지하에서 근무한 인간에겐 지하가 곧 세계의 전부가 되는 거지. 그러니까 산다는 게 이런 거라는 둥, 다들 이렇게 살잖아... 그 따위 소릴 해선 안 되는 거라구. 너의 세계는 고작 너라는 인간의 경험일 뿐이야. 아무도 너처럼 살지 않고, 누구도 똑같이 살 순 없어. 그딴 소릴 지껄이는 순간부터 인생은 맛이 가는 거라구.(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에서)

 

 

*

너의 세계는 고작 너라는 인간의 경험일 뿐.

 

요즘 그 생각을 많이 한다. 세계라는 건 결국 개인의 경험치라는 것. 너의 세계는 고작 너라는 인간의 경험일 뿐이라는 것. 그래서 산다는 게 이런 거라는 둥, 다들 이렇게 살잖아 따위의 소리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

 

하지만 나는 늘 고작 나라는 인간의 경험일 뿐인 것들을 말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는 고작 '나'이므로, 내 경험에 대해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것들을 누군가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 그것이 마치 삶의 진리라도 되는 양 말해서는 안된다는 것. 산다는 게 이런 거라니. 그건 나만의, 그건 너만의 삶일 뿐이지 않은가.

 

하지만 불쑥 내가 느낀 이 감정이 세상의 전부인 양 말할 때가 있다. 그게 삶이 아닌가 하고 함부로 말하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말을 더욱 하고 싶어 진다. 그럴 때마다 저 문장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런 게 삶이 아니라, 그런 것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수많은 삶의 모습 중 하나라는 것을 늘 생각할 수 있다면.

 

나는 내 경험에 대해서 말하고, 너는 네 경험에 대해서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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