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를 다녀왔다.
이번 여름은 제주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느낌이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육중하게 밀려드는 두텁고 습한 공기와 바람이, 그곳이 다름 아닌 제주도임을, 그리고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절절하게 상기시켜 주었던 것이다. 나는 오래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천천히 그 습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렇게 하면 이 습하고 더운, 제주도 특유의 날씨에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다는 듯이.
처음부터 이번 여행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리 내키지 않았다. 거의 반쯤 떠밀려 간 여행인 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라는 것에 위안을 삼을 수도 있으련만, 이번에는 어쩐지 그런 마음마저 들지 않았다. 이렇게 설레지 않는 여행이 있었던가? 나는 떠나기 전부터 피곤할 거라는 생각에 지친 기분마저 들었다. 이건 내 안의 무언가가 심각하게 손상되었기 때문일까? 언제 다녀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제주도 여행이 아니던가!
이것은 내 마음의 문제이지, 제주도의 문제는 아니다. 제주도는 언제나 거기 있었다. 나는 공항에 내리자마자 느꼈던 공기의 질감과 바람의 손길을 상기하며, '제주도에 내가 있다'라는 사실만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제주공항에 내려서 동백동산으로 가는 차 안에서 본 제주시의 풍경은 좀 오래되고 낡은 느낌이었다. 페인트가 벗겨졌거나 부분적으로 떨어져 나간 건물의 벽체와 빛바랜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풍경들은 여느 오래된 어촌 마을을 생각나게 했으나, 곧 이어지는 풍경들, 짙은 녹색과 검은 돌들로 이루어진 자연의 풍경은 이곳이 제주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 풍경들이었으며, 그 풍경들을 이루고 있던 두 가지 색깔이었다. 그 색깔들은 모두 숲에서 나왔다. 제주도의 숲은 그렇게 어둡고, 깊었다. 제주도의 숲은 짙고 윤기 나는 녹색(그것을 일명 타오르는 녹색이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과 두텁고 깊은 검은색으로 내게 다가왔다. 여느 숲과는 달리 음험하고 신비로우며, 살아있음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는 그런 나무들이 마치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처럼 뿌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제주도의 도로가에 무심히 심겨 있는 나무들과 숲을 이루고 있던 나무들이 모두 다 그러했지만, 특히 비자림에 있던 나무들은 그것이 식물에 가깝다기보다는 동물에 더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마디로 거칠 것 없는, 날 것의 무한한 생명력으로 충만한 나무들이었다. 그런 나무들이 모여 이룬 숲을 거닐고 있을 때, 문득 비현실적인 느낌이 나를 사로잡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마치 물속 같은 혼몽함으로 가득했다. 한낮인데도 밤의 어둠과도 같은 숲 속을 걸을 때면 내가 한 마리 물고기가 된 듯했다. 꿈과 현실이 뒤섞였다.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습기와 '타오르는 녹색'과 '깊은 검은색'으로 가득한 제주의 자연이 나를 꿈과 현실의 경계로 밀어 넣었다. 제주도 자체가 살아있는(모든 것들이 다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였고, 나는 그 생명체가 내뿜는 숨 속에 잠시 내 몸을 담갔다.
모처럼 비행기를 타고 먼 곳을 다녀오니, 여행에 관한 책을 쓴 여러 작가들이 떠올랐다. 알랭 드 보통과 장 그르니에가 떠올랐고, 김영하와 김연수도 생각났다. 제일 먼저 떠오른 문장은, '여행의 전부는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는(뭐 이와 비슷한) 문장이었는데, 도무지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알랭 드 보통이었던가? 찾다가 지쳐서 그만두었다. 이런저런 책들을 뒤적이다가 장 그르니에가 쓴 문장들을 발견했다.
그는 사람들이 여행을 왜 하는 것이냐고 묻는 질문에, '우리 마음속의 저 내면적인 노래를 충동할 수 있는 그런 감동들'을 체험해 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런 내면적 노래가 없이는 우리가 느끼는 그 어느 것도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라고 말이다. 내 이번 여행도 그러했는가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폭염경보 문자를 받았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여름의 계고장을 받아 든 기분이었다. 제주도를 다녀온 지 불과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꿈을 꾼 듯 아련하다.
어쩌면 모든 여행은 우리가 미리 들여다본 꿈이 아닐까.
*제목은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에서 착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