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성의고리

너의 이름은

시월의숲 2022. 7. 30. 14:34

 

오랜만에 울진 성류굴을 다녀왔다. 7월 초에 다녀왔는데 이제야 생각을 좀 정리할 수 있었다. 아니, 생각의 정리라기보다는 문득 다시 생각났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나는 문득 울진의 성류굴이 생각났고, 그래서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고, 사진 속 동굴의 기기묘묘한 형상에 다시 한번 놀랐으며, 오래전 몇 번 다녀왔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으며, 그래서 이번이 처음 방문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 통상 그러하듯 나는 동굴이 거쳐왔을 오랜 시간들(감히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을 상상하다, 어쩔 수 없이 인간이 가진 유한함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동굴은 시간의 집적이 돌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닌가. 그곳에서 우리들은 한없이 티끌만 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식상하고도 부질없는 생각을. 하지만 나는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특이하게 생긴 종유석과 석순, 석주들에게 인간들이 저마다 이름을 붙여 놓았다는 것이다. '사랑의 종', '로마의 궁전', '법당' 등등. 함께 간 우리들은 그 이름들과 종유석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종유석의 모양 속에 이름과 같은 형상이 보이는지 한참 살펴보았다. 그렇게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었으나, 그렇게 한참을 쳐다보면 붙여놓은 이름과 같은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인간들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이고, 그러기 위해서(혹은 의미 만들기의 일환으로) 이름 붙이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물론 이름이 없으면 그것에 대해서 말하기가 곤란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그것을 더 잘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수많은 무명의 존재들 속에서 너의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엄청난 일일 것이므로.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리라. 자연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연에게 이름 따위는 불필요하거나 아무 의미 없는 것일 테니까. 자연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바로 인간이 아닌가. 인간이 붙여놓은 이름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말이 없다. 그저 존재할 뿐. 존재 자체가 존재 이유가 되는. 아니, 이유 따윈 필요 없는 존재들. 그저 바라볼 뿐인. 그 속에서 인간들은 얼마나 하찮은 존재들일지.